아파트 단지에 장이 섰는데 작은 트럭에서 옥수수빵을 팔고 있었다. “구수하고 맛좋은 옥수수빵 이천 원”이라는 글자와 구수하게 풍기는 냄새에 끌려 한 봉지 사 들고 와 먹어 보니 외할머니의 옥시기빵 맛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충청도 외할머니댁에 놀러 가면 종종 아궁이에 불을 때고 솥단지에 옥수수빵을 쪄주셨다. 은빛 머리카락을 참빗으로 곱게 빗어 비녀로 쪽을 진 외할머니가 옥시기빵 먹으라며 건네주신 고소하고 따뜻한 빵은 그때 최고의 간식이었다. 지금은 먹을 것이 너무 많아 무엇을 먹을지 선택을 위한 고민을 해야 할 지경이지만, 군것질거리가 많지 않았던 어린 시절 씹을수록 고소한 옥시기빵 맛에 반해 지금도 빵을 좋아하는 것 같다. 몇십년이 흘렀어도 코끝을 스치는 옥시기빵의 구수한 냄새는 마치 외할머니의 체취처럼 기억된다.
가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옥수수빵에 홀려 먹어 봐도, 빵집의 진열대에서 눈길을 끄는 옥수수빵에 넘어가 먹어 봐도 그때 그 맛이 아니다. 모양은 그럴듯하지만 너무 달거나 보들보들해 그 깊은 맛을 찾을 수가 없다. 옥시기빵처럼 옥수숫가루만을 재료로 쓰지 않고 밀가루에 여러 첨가물을 많이 섞기 때문인 것 같다. 별스런 첨가물이 없어도 훨씬 더 맛있는 것으로 기억되는 옥시기빵의 추억을 되살려 집에서 만들어 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다 밀가루를 섞지 않고 옥수숫가루로만 빵을 만드는 법을 알게 됐다. 나름 기대하며 열심히 만들어 보았지만 빵도 아닌, 떡도 아닌, 별로 먹고 싶지 않은 간식거리를 개발해내고 말았다. 방법을 알아도 그 맛을 낼 수는 없었다.
지금은 옥수수빵이 영양 간식이 되었지만 옥수수빵은 빈국 경제의 상징처럼 어렵던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미국에서도 옥수수빵은 가난한 날을 연상하게 하는 것인지 에이브러햄 링컨도 옥수수빵을 먹으면서 자랐다고 기록한다. 내가 잊지 못하는 추억의 옥시기빵 맛을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북한의 어린아이들이 맛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세원(에세이스트)
[살며 사랑하며-김세원] 옥시기빵
입력 2016-04-26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