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최석운] 화가로 살아간다는 것

입력 2016-04-26 17:29 수정 2016-04-27 11:03

“그림만 그리면서 어떻게 생활이 가능한가요?” 이따금 사람들이 눈치를 살피며 이렇게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그림만 그리면서 가족을 부양하며 먹고사는 것이 신기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프로인 화가는 당연히 그림을 팔아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림이 생계의 방편으로 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그 과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창작의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자유로운 생활과 행동이 보통사람 눈에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비치기도 하는데 그런 자유의 대가는 실상 혹독하다. 어쩌다 값싼 예술적 객기를 부리며 대중을 현혹하는 예술가의 삶이 있다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 전에 본인이 먼저 지칠 수 있다.

자신이 희구하는 작업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개인전이든 단체전이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준비하지만 전시가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전시장에서 다행히 작품이 잘 매매되거나 관람객의 반응이 좋으면 갤러리와 여러 전시 관계자의 부름을 받아 다음의 전시도 기대할 수 있고 계속해서 작업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는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져 사람들이 그 작가를 기억하고 계속 찾게 된다면 그림이 호구지책이 될 뿐만 아니라 명예도 덩달아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꿈같은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한 작가가 자신의 작업세계를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닐 뿐더러 어느 정도 행운이 따라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처절한 삶처럼 사후에나 환호와 각광을 받는 경우도 많다.

화강석의 거친 표면과 같은 한국적 미감을 표현한 화가 박수근의 유품 자료 중에서 유독 나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흑백 사진이 하나 있다. 그가 많은 그림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루 위에 흰 반소매 내의를 입은 채 앉아 있고 딸과 부인의 모습도 보이는 사진이다. 시골의 농가에서 열정뿐인 화가로 젊은 시절을 보낸 적 있는 나로서는 이 사진이 특별히 애틋하게 느껴진다. 전쟁 후의 혼란 속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 잠시나마 가족과 함께한 평온한 순간이 사진에 인화돼 있는데 사진 속 고단한 행색의 그 인물은 지금 자신의 그림이 국내 최고 평가를 받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작가의 그림은 전시장에서 그림에 걸맞은 액자로 옷을 입고 화려한 조명으로 화장을 하고 나면 작업실 한 귀퉁이에 틀어박혀 있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져 시집가는 새색시처럼 예뻐 보인다. 자신의 작업이 남들에게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작가는 없을 것이다.

그림 애호가가 작가의 작업 현장으로 직접 찾아와 맨얼굴의 작품을 구입하려는 경우가 가끔 있다. 지인의 소개로 온 사람에게 야박하게 문전박대는 할 수는 없지만, 서로 구면이 아닐 경우는 긴장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림을 두고 흥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가능하면 전시장에서 전문 화상에게 판매를 맡기는 것이 여러모로 품격이 있고 절차상 문제될 소지가 적다.

“이 그림을 사 두면 나중에 값이 많이 오르겠지요?” 전시 현장이나 작업실을 방문한 사람이 나의 그림을 가리키며 묻는 경우가 있다. 농담이 묻어나는 질문이지만 작가의 얼굴은 붉어질 수 있다.

모든 작업이 끝난 내 그림이 누군가의 손에서 떠난 뒤까지 책임을 질 수는 없다. 내 그림이 나중에 그분들의 ‘팔자’를 고쳐줄 수 있는 마력이 있을지 없을지 지금은 모른다. 내일이라도 그림의 가치가 치솟았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나의 능력 밖이다. 하지만 꿈은 자주 꾼다. 내 그림이 그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