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정글서 살아남기…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냅니다

입력 2016-04-26 19:09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무한도전’ ‘1박2일’ ‘자기야-백년손님’ ‘런닝맨’. MBC·KBS·SBS 제공
“박수 받고 끝나는 예능은 없어. 망해야 끝나는 거야.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 계속 해. 그런데 영원히 박수만 칠 수는 없잖아. 언젠가는 질리고 뻔해지고 점점 안보고…. 그러면 그 때 끝나.”

예능 PD들의 일과 사랑을 그렸던 드라마 ‘프로듀사’(KBS)에서 차태현(라준모 역)의 대사다. 이 한마디는 예능의 ‘잔인한 운명’을 잘 설명해준다. 예능은 호흡이 짧고 유행이 빠르게 변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사랑받기가 힘들다. 빠른 호흡으로 계속 끌어가려면 제작진과 출연진의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그렇게 애써 만들어도 보통 끝은 ‘안 좋다’.

그래도 ‘장수 예능’은 있다. 짧게는 7년, 길게는 37년째 사랑받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장수 비결’을 살펴봤다.

무한도전·1박2일·런닝맨·라디오스타… 1인자가 사는 법

MBC ‘무한도전’ ‘라디오스타’(라스), KBS ‘1박2일’, SBS ‘런닝맨’은 각 방송사에서 오랫동안 예능 대표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무도는 11년, 라스와 1박2일은 10년, 런닝맨은 7년째 사랑받고 있다.

예능 1인자들은 자기만의 색깔이 확실하다는 게 공통된 특징이다. 멤버 또는 MC들의 찰떡같은 호흡과 오랫동안 이어오면서 캐릭터가 분명해진 점도 인기의 요인으로 꼽힌다.

무도는 쉽게 해내기 어려운 스포츠 장르 등 다양한 분야에 과감하게 도전한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고수해 오고 있는 몸개그, 즉흥적인 콩트 등 B급 개그의 정신도 잃지 않는다. 무도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는 게 무도가 1인자 자리를 지켜내는 비결이다. 무도라고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김태호 PD는 “‘토요일 저녁에 외식, 데이트 포기하고 11번 틀었는데 정준하, 박명수, 정형돈, 노홍철 같은 사람들이 나오면 기분이 좋겠니?”라는 식의 타박을 감내해야 했다.

라스는 지상파 토크쇼의 독보적인 존재다. 4명의 MC와 여러 명의 게스트가 나와 단체 토크쇼를 벌이는데 질리지 않는다. 독한 ‘돌직구’ 질문은 라스의 생명과도 같다. 독한 질문은 때론 게스트의 의외의 모습까지 끄집어내면서 수많은 ‘예능의 숨은 보석’을 발굴해냈다.

1박2일은 여행 예능의 콘셉트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멤버가 여러 차례 바뀌긴 했지만 멤버들이 보여주는 호흡도 시청자들을 끌어당긴다. 잔잔하면서도 고되고 웃음이 넘치는 여행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한다. 최근 국내 여행을 고집하지 않고, 게스트를 적절히 활용하는 변화가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시청률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런닝맨은 여전히 SBS 대표 예능이다. 중국 등 해외에서 반응이 뜨겁다. 런닝맨은 최근 게임에서 벗어나 멤버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며 호평을 받고 있다.

이흥우 MBC 예능1국장은 “예능은 지루하거나 진부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너무 앞서나가도 안 본다. 이런 시청자들의 욕구를 잘 파악해서 만족시켜주는 게 장수 예능의 비결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의문의 1승…트렌디하지 않아도 괜찮은 예능들

최근 예능 트렌드에서는 살짝 비켜가 있지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예능프로그램들이 있다.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KBS ‘비타민’, SBS ‘자기야-백년손님’ 등이다. 세 프로의 최근 시청률은 각각 7.9%, 7.4%, 8.1%다(닐슨코리아 제공). 비인기 시간대에 주력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꾸준히 좋은 성적표를 받고 있다.

그렇다고 이 방송들이 ‘뻔한 내용’으로 채우는 것은 아니다. 스토리와 예능이 결합한 드라마타이즈 타입의 서프라이즈, 정보와 예능이 결합한 비타민, 토크쇼와 리얼리티쇼가 만난 자기야 모두 새로움도 추구한다.

2002년부터 15년째 방송 중인 서프라이즈의 김진호 PD는 “장수 비결은 잘 모르겠다. 살아남을 때마다 감사하고, 계속 죽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최장수 예능은 KBS ‘전국 노래자랑’이다. 1980년 11월 시작해 37년째 일요일 오전을 책임져 온 ‘원조 음악예능’이다. 올해 구순을 맞는 송해가 88년부터 지금까지 MC로 활동해왔다(94년 4∼10월 제외). KBS ‘가요무대’도 있다. 85년 11월부터 30년 넘게 방송 중이다. 아나운서 김동건이 첫 방송부터 지금까지 줄곧 진행을 맡아왔다. 두 프로 모두 11% 안팎의 높은 시청률이 나온다. 50대부터 70대 이상 시청자들을 꽉 잡고 있는 인기 프로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