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전 8시쯤 서울 지하철 1, 9호선 노량진역에 피켓을 든 한 남성이 자리를 잡았다. 모자를 푹 눌러쓴 그는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 한 손에는 자신의 키보다 큰 피켓을, 다른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연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은 평범한 ‘피켓 알바’였다.
그런데 피켓 속 글은 낯설었다. 학원이나 가게를 홍보하는 문구 대신 “‘압도적 1위 공단기’ 위 광고는 수험생을 현혹하는 부당·기만 광고임이 법원의 판결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남성이 서 있는 곳은 공단기(공무원단기학교)라는 공무원시험 학원을 선전하는 광고판 바로 옆이었다. 광고판에는 ‘공무원 최종 합격생 3명 중 2명은 공단기 수강생’ ‘많은 수험생들이 선택하는 곳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문구가 적힌 광고가 걸려 있었다.
공단기 광고판 옆에서 이를 부당·기만 광고라고 시위하는 것이다. 남성은 공단기의 경쟁 업체인 박문각 남부고시학원이 고용한 알바였다.
25일 오후 1시쯤에는 박문각 임용고시학원 건물 앞에 다른 ‘피켓 알바’가 등장했다. 그도 같은 내용의 피켓을 들었다. 이 학원 수강생이라는 그는 “지난 1월 말부터 알바를 시작했다. 평일 오후 12시20분부터 1시50분까지 서 있고 시급 2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고시학원이 몰려 있는 노량진이 때아닌 ‘광고전쟁’으로 뜨겁다. 두 학원은 이미 법정다툼도 벌였다. 남부고시학원을 운영하는 박문각교육은 지난해 공단기가 광고하고 있는 ‘공무원시험 확고한 1위’ 등의 문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광고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김용대)는 지난해 12월 광고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압도적 1위’ ‘공무원 합격생 3명 중 2명이 공단기 출신’ ‘공무원시험 확고한 1위’ ‘1위 공단기’ 등의 8개의 문구를 쓰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도 두 학원의 싸움은 식지 않고 있다. 여전히 공단기 측이 몇 개 문구를 광고에 활용하고 있어서다. 공단기 관계자는 “일부 직렬에 한해 3명 중 2명이 합격한 것은 맞고 홈페이지에도 기준을 명확하게 적고 있다”며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이는 법원도 인정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압도적 1위’라는 문구에 대해서도 “가처분 판결이 내려져도 광고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고 규정에 맞게 수정하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남부고시학원 측은 반발하고 있다. 남부고시학원 관계자는 “매출액이나 수강생 수 등 학원 사이의 우위를 나타낼 수 있는 수치는 없다. 그런데도 (공단기 측이) 1등 이미지를 형성하는 광고를 하고 있다. 다른 학원들도 불만이 많다”고 주장했다.
두 고시학원의 광고전쟁을 바라보는 수강생들은 입맛이 쓰다. ‘미래’ 없는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면서 빚어진 씁쓸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윤모(25·여)씨는 “화려하게 광고하고 법정다툼까지 하는 걸 보니 공무원시험 수험생이 많긴 많은 모양”이라고 했다. 공시로 불리는 7급과 9급 공무원시험 준비생은 총 36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홍석호 오주환 이가현 기자 will@kmib.co.kr
공시 열풍 탄 학원들 ‘씁쓸한 광고전쟁’
입력 2016-04-25 17:42 수정 2016-04-25 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