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에게 인생은 투쟁의 연속이며 다투고 속여서라도 움켜쥐어야 하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고,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 에서의 장자권과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일로 야곱은 도망하는 신세가 됐고, 하란 땅에 거주하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머슴살이 겸 데릴사위로 20년 가까이 얹혀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야곱은 레아와 라헬 그리고 빌하와 실바 사이에서 태어난 열한 아들과 딸들 그리고 수천 마리의 소떼 양떼 낙타떼를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입니다. 형과의 사이엔, 아직 화해나 평화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식구들과 소유물들을 앞세워 보내고, 강가에서 홀로 마지막 밤을 지새우는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나타나서 야곱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했습니다.
야곱은 그 씨름에서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다”며 버팁니다. 남자는 자신이 야곱을 이기지 못한다고 보고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칩니다.
얍복강은 일종의 저지선입니다. 하나님이 멈추게 하신 것입니다. 개인이든 민족이든, 하나님과 씨름해서 통과돼야만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광활한 대지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를 때쯤, 야곱과 낯선 남자 사이의 씨름은 승패가 결정 납니다.
씨름이 끝나고 ‘그 남자’가 야곱에게 묻습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지금 야곱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름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야곱이 20년 전에도 받았던 질문입니다. 그가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에게서 장자의 축복을 받아내려 했을 때, 아버지가 던진 질문입니다.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창 27:18)
그때 야곱은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네, 아버지. 저 큰 아들 에서입니다.” 거짓말을 하였었지요. 그러나 지금, 이제 똑같은 질문을 하나님의 천사로부터 받으면서 야곱은 정직하게 대답합니다. “네, 저의 이름은 야곱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정직하게 고백하는 야곱에게 축복을 줍니다. 축복의 내용은 영적인 차원의 것으로 ‘새로운 이름’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발꿈치를 움켜쥔 자’라는 의미의 야곱이 ‘하나님과 싸워 이기다’라는 의미의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이름만이 아니라 인생 자체가 변화했습니다. 그의 전 생애를 바꾸어 놓은 은혜와 거듭남의 체험입니다. 그는 이제 ‘이스라엘’ 민족의 미래를 짊어질 성숙한 지도자가 되어 ‘브니엘의 언덕’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씨름을 통해 야곱이 그렇게 회개와 신생의 은혜를 경험했던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우리들의 얍복강’이 필요합니다. 얍복강 씨름은 우리들을,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아가는 ‘새 이스라엘’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공규석 목사 (백석대학교회)
◇약력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현 백석대 신학대학원 교수
[오늘의 설교]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입력 2016-04-25 18:37 수정 2016-04-25 2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