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문명의 역설

입력 2016-04-25 17:52

일본 규슈 중심부의 구마모토현에 서 지난 14일 규모 6.5의 지진이, 16일에는 7.3의 강진이 발생했다. 23일까지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48명, 피난생활 중에 숨진 재해 관련사는 12명, 부상자는 1100여명으로 집계됐다. 지진규모에 비해 인명피해는 크지 않았다. 1995년 1월 17일 발생한 고베대지진은 규모 6.9로, 파괴력은 구마모토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피해규모는 훨씬 더 컸다. 사망자가 5530명, 파괴된 건물은 40만채에 달했다.

구마모토의 인구밀도는 ㎢당 241명으로 당시 고베의 2556명에 비해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고베는 간척으로 갯벌을 메워 만든 인구 100만명 도시다. 랜드마크급 고층빌딩, 고가도로 등 훌륭한 인프라는 재앙이 닥치자 흉기가 됐다. 지진 전문가들의 말처럼 “사람을 죽이는 것은 지진이 아니라 건물”인 셈이다. 이 같은 ‘문명의 역설’은 역사상 많은 지진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사람도 자연재해 대처에 관한 한 퇴보하고 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의 유발 하라리 교수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7만년 전부터 1만2000년 전 농업혁명 사이의 수렵채집인들은 개인 수준에서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 사피엔스(현생인류)의 평균 뇌 용적은 수렵채집 시대 이후 오히려 줄었다는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후기 구석기시대 인류가 ‘최초의 풍요사회’를 누렸다는 것은 이제 정설이 됐다.

수렵채집인은 지진 발생의 기미를 주변의 동식물과 무생물의 작은 변화를 통해서도 감지했을 것이다. 2004년 인도와 동남아 여러 나라를 덮친 인도양 지진·해일 당시 많은 코끼리 등 야생동물들이 안전하게 대피했던 사실을 떠올려 보라. 현대인들은 생존에 필요한 많은 것을 전문가와 분업체계에 맡겨 둔 채 ‘바보들을 위한 생태적 지위’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기후변화시대에 닥쳐 올 재난에 대비해 이따금 아무런 전자장비 없이 야생에서 적응하는 훈련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임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