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에 이어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을 신청키로 하는 등 국내 해운업계 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특히 현 상황이 호전되지 않을 경우 기존 4개로 운영되던 글로벌 해운 동맹(얼라이언스) 체제가 급속히 재편되는 과정에서 국적 선사가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진해운이 채권단 및 금융 당국과 진행할 자율협약 논의도 적잖은 난관이 예상된다.
◇국적 선사, 해운 동맹 ‘왕따’ 되나?=24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재 4개 동맹 체제로 나뉜 글로벌 해운동맹이 내년 계약 만료를 앞두고 크게 흔들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9일 세계 3위인 프랑스 CMA-CGM이 중국 코스코, 대만 에버그린, 홍콩 OOCL과 손잡고 새로운 ‘오션 얼라이언스’를 내년에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세계 1, 2위로 동맹을 맺고 있는 ‘2M’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지만 국내 양대 선사 입장에선 동맹 파트너를 잃었다. 에버그린과 코스코는 현재 한진해운, 양밍, K라인과 함께 ‘CKYHE’ 동맹의 주요 축이다. 해운사 순위에서도 두 회사는 한진해운에 앞서 있다. OOCL은 현대상선이 속한 ‘G6’에 속해 있다 새로운 동맹을 택했다.
한 회사가 전 세계 모든 노선을 운영하기 힘든 상황에서 든든한 동맹은 해운사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비용절감을 위해 도입한 초대형 선박에 화물을 채울 수도 있고, 서비스 지역도 확대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재편 과정에서 새로 탄생한 오션 얼라이언스가 2M에 맞먹는 규모로 커지면서 가격 및 서비스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라스 옌슨 시인텔리전스 컨설팅 대표는 WSJ를 통해 “기존 4개 동맹이 3개로 전환되고, 동맹에 끼지 못하는 선사들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동맹체제 변화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비해 왔다”며 “준비 중인 동맹체제를 곧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자율협약이 제때 개시되지 못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면 동맹 구성 과정에서 우리 선사들이 배제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해운사는 물론이고 컨테이너 처리 기준 세계 6위인 부산항을 비롯해 주요 항만 시설이 연쇄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해양수산부는 25일 김영석 장관 주재로 해운동맹 재편 관련 대책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회의에는 해운물류업·단체 및 항만공사 관계자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학계 등 전문가들이 참석한다.
◇자율협약 산 넘어 산=한진해운이 25일 자율협약을 신청하더라도 채권단과의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현대상선 수준의 방안이 담겨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의 경우 채권단은 외국 선주들과의 용선료(선박을 빌리는 비용) 인하 재협상, 사채권자 채무재조정을 전제로 자율협약에 동의했다. 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300억원 사재 출연 및 경영권 포기, 현대증권 등 자산 매각, 감자안 의결 등도 자구 노력의 일환으로 진행했다.
한진해운은 장기용선계약에 의해 60척의 컨테이너선과 32척의 벌크선을 운항하고 있다. 올해 지불해야 할 용선료만 9288억원에 달한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지불해야 할 용선료는 2조9980억원으로 3조원에 육박한다.
은행권이 아닌 사채권자들과의 채무조정 과정도 쉽지 않다. 한진해운은 조정이 힘든 비협약 채권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한진해운의 총 차입금 5조6000억원 가운데 은행권 대출은 7000억여원에 불과하다. 반면 현대상선은 4조8000억원의 차입금 중 은행권에서 빌린 돈이 1조2000억원이다. 또 자율협약 신청 전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 일가가 보유지분을 모두 팔아치운 데 대해 금융당국이 조사중이어서 변수가 될 수 있다.
한진해운까지 자율협약이 개시될 경우 양대 해운사가 모두 채권단 관리하에 들어와 두 회사의 통합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말 두 회사의 통합 가능성이 제기됐을 때 해운업계에서는 두 회사의 사업 구조가 거의 비슷하고 노선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통합 시너지가 없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두 회사의 구조조정이 글로벌 해운업계의 재편과 맞물리면서 통합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해운동맹서 왕따 위기… 엎친데 덮친 한진해운·현대상선
입력 2016-04-24 2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