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의 위험을 보여주는 ‘담뱃갑 경고그림’이 다시 진통을 겪고 있다. 이 제도는 올 연말 첫 시행된다.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는 지난 22일 경고그림을 담뱃갑 상단에 위치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철회하라고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복지부는 이에 반발해 즉각 재심사를 요청했다.
흡연 반대 시민단체도 “정부가 국민 건강보다 담배회사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며 규개위를 비판했다. 반면 담배회사와 판매상들은 “흉측한 경고그림이 매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규개위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쟁점은 ‘위치’=이번 논란에서 쟁점은 담뱃갑 경고그림의 위치다. 복지부는 담뱃갑 포장지의 윗부분(상단)에 들어가야 흡연율을 낮출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해 10월 입법예고했다. 규개위가 철회를 권고한 것도 바로 이 시행령 개정안이다. 복지부는 담뱃갑 상단에 경고그림을 배치해야 흡연 억제와 금연에 미치는 영향력이 높다는 해외 연구결과를 근거로 들고 있다.
이와 달리 규개위는 경고그림이 담뱃갑 상단에 있든 하단에 있든 금연 효과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복지부가 내세운 해외 연구결과에 대해서도 ‘국내에서 실시된 연구가 아니며 세계적으로 똑같을지는 알 수 없다’는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경고그림 위치를 담배회사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24일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노출이 더 잘되는 위치는 담뱃갑 윗부분”이라며 “강제 규정이 없으면 담배회사는 가장 금연 효과가 낮은 하단에 경고그림을 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기준은 ‘상단 배치’ 권고=담뱃갑 경고그림 도입은 지난해 입법 과정에서도 ‘지나친 혐오감을 줘서는 안 된다’는 단서가 붙고 나서야 국회를 통과했다. 이번 규개위 결정에도 담배회사와 판매상들의 반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판매상들은 담뱃갑 상단에 경고그림이 들어가면 진열 시 흉측한 그림이 고스란히 노출돼 매출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우려한다. 윤용식 한국담배판매인중앙회 홍보실장은 “흡연자가 아닌 담배 판매자들부터 혐오스러운 그림을 봐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며 “흡연자의 흡연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면 상단이든 하단이든 경고그림으로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규개위 결정이 국제기준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은 경고그림의 상단 배치를 권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규개위가 FCTC 권고와 달리 회의에 담배업계 관계자를 출석시켜 의견을 들은 점도 문제시되고 있다.
규개위는 다음 달 13일 재심사를 벌일 예정이다. 다만 의견을 번복할지 지켜봐야 한다. 복지부 한 관계자는 “규개위는 흡연 경고그림을 (진열대에서) 가려야 된다는 전제를 갖고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흡연 경고그림 담뱃갑 하단 배치?
입력 2016-04-24 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