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구 평균 구속 135.4㎞. 변화구 119.5㎞, 체인지업 124.5㎞….’
평범한 고교생 투수가 던질 법한 공이다. 초고교급이라 스카우터들의 표적이 될 만한 투수는 10대의 나이에도 150㎞를 상회하는 공을 던진다. 그런데 이런 공을 던지는 프로야구 선발투수가 있다. 그것도 초라한 성적이 아니라 1년 동안의 장기레이스 초반부에 불과한 현재 벌써 4승이나 선발승을 거둔 투수가 던지는 공이다.
주인공은 바로 넥센 히어로즈 소속 오른손 투수 신재영(27)이다. 엄청 느린 그의 공을 내로라하는 각 구단 강타자들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다. 번번이 헛스윙에 배트에 맞혀도 제대로 맞질 않아 내야땅볼이거나 힘없이 외야로 날아가는 플라이볼이다.
신재영은 지금까지 4번의 선발 출장을 모두 승리로 장식했다. 지금까지 잡은 삼진만 15개. 주무기는 바로 슬라이더다. 보통 투수들의 커브에 해당할 정도로 느린 스피드로 날아오는 그의 슬라이더는 타석 근처에서 갑자기 왼쪽으로 급격하게 휘어나간다. 스트라이크가 아니라 볼이겠지 하는 심정으로 타석에서 기다리면 여지없이 스트라이크로 꽂힌다. 절묘한 볼 컨트롤에 대해 상대팀 감독과 코칭스태프들도 혀를 내두르기 일쑤다.
그의 구종별 피안타율은 패스트볼 0.292, 변화구 0.186이다. 각 구단 선발투수들의 평균 피안타율이 0.305, 0.252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낮은 수치다. 신재영의 구종 중 아직 완전하게 연마하지 못한 체인지업만 피안타율이 0.625로 매우 높을 뿐이다. 지금까지 소화한 26이닝에서 27피안타 4실점만 허용했다. 볼넷은 하나도 없었다. 26이닝 연속 무볼넷은 프로야구 사상 처음이다. 지난 23일 LG전까지 4전 전승에 평균자책점 1.38을 기록했다. 다승은 1위이고, 평균자책점은 2위다.
이런 ‘무적의 투수’를 알아본 구단은 전혀 없었다. 아니 신재영은 느린 구속 때문에 아예 ‘직업 야구선수’의 길을 여러 번 포기할 뻔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구단에 입단하려 했지만, 어떤 팀도 그를 스카우트하지 않았다. 결국 단국대에 입학해 투수 생활을 해야했다. 졸업하고 열린 2011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8라운드 69순위로 NC 다이노스에 입단했다. 거의 꼴찌와 다름없는 드래프트 순위였고, 당시 신설팀이던 NC의 선수부족이 아니었다면 입단도 힘들었다. 2년을 별 역할 없이 벤치를 지키다 2013년 4월 NC와 넥센의 2대 3 트레이드로 유니폼을 갈아 입었다. 또 2군을 전전했고, 실망한 그는 같은 해 12월 군복무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경찰청에 입단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넥센으로 복귀했지만 역시 2군을 탈출하지 못했다.
이때 신재영을 주목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염경엽 감독이었다. 염 감독은 신재영을 다시 육성했다. 투구판을 밟는 지점부터 새로 가르쳤고, 투구 후 피니시 동작도 전부 바꿨다. 여기에 싱커와 서클 체인지업도 익히게 했고, 원래 던지던 슬라이더는 그립부터 다시 잡게 하고 예리한 변화각도를 만들었다. 신재영은 묵묵하게 염 감독의 조련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렇게 ‘중고 신인’ 신재영은 ‘극강 선발투수’로 변신했다. 벌써부터 신인왕과 다승왕이 거론되고 있다. 프로 구단 유니폼을 입기 시작한 이후 만 5년 만의 일로, 그야말로 ‘슬로볼러의 반란’이다.
“빠른 볼 던진다고 다 투수입니까? 타자가 제대로 치지 못하는 공을 던지면 됩니다.”
염 감독은 신재영의 연승 행진을 지켜보며 이렇게 말한다.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변화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고, 확실한 주무기를 가지고 있는가가 제가 보는 투수의 기준”이라고도 했다.
염 감독은 지난 달 28일 프로야구 개막 직전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우리를 꼴찌 후보라 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전력을 평가에서 제외한 것 같다”고도 했다. 바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력이 바로 신재영이었던 셈이다. 신재영은 여전히 느리게 직구를 던지지만, 주저앉을 뻔 할 만큼 느리게 진척되던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는 이제 황금기에 진입하는 모습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느린 볼’이 춤춘다… 넥센이 나르샤
입력 2016-04-25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