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웰다잉, 이제 준비합시다
⑨ 죽음의 진실, 의사가 바로 알려야
죽음이 임박한 말기 환자에게 이 사실을 알릴 것인가. 환자를 죽음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무방비 상태로 있게 하는 게 옳은가. ‘죽음 예정 통보’는 누가 하는 게 바람직한가. 수많은 의료 현장에서 흔히 맞닥뜨리는 상황이다.
암 환자 42%, 자신이 말기라는 사실 몰라
가족들은 환자가 ‘나쁜 뉴스’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을까 걱정한다. ‘하얀 거짓말’을 해서라도 진실을 숨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국립암센터가 2010년 11개 병원의 18세 이상 말기 암 환자 481명과 그 가족 381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말기 진단 시점에 가족 83%는 ‘환자가 말기 상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반면 환자 58%만이 자신이 말기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암 환자 10명 가운데 4명(42%)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듣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말기라는 걸 알고 있는 환자만 떼어놓고 다시 조사한 결과, 의사로부터 직접 설명을 들은 환자는 56%에 불과했다. 가족이 알려줬다(11%)거나 상태가 악화돼 스스로 추측해서 알게 됐다(29%)는 환자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의사도 ‘말기 통고’를 하는 일이 쉽지 않다. 더 이상 치료가 의미 없다는 걸 알지만, 이를 알리는 행위가 환자의 잘못된 선택이나 치료 의지를 꺾는 결과를 초래할까 염려하는 의사도 적지 않다.
의사들 “죽음 예정 통보 때 스트레스 크다”
암 등 만성질환을 진료하는 의사 10명 가운데 9명은 ‘말기’라는 상황을 환자에게 직접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죽음 예정 통보’를 하면서 스스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일보는 지난 11∼15일 ‘빅5 병원’(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의 교수 8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암과 간경화, 폐질환,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 치매 등 만성질환을 다루는 소화기내과, 호흡기내과, 감염내과, 신경과 등에 소속된 의사들이다.
먼저 ‘환자가 더 이상 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점차 악화돼 수개월 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말기 상태일 때, 환자가 그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97%(80명)가 ‘환자 본인이 알아야 한다’고 답했다. ‘환자 본인은 모르는 게 좋다’는 응답자는 2명에 그쳤다. ‘말기 상황임을 누가 알려주는 것이 바람직한가’라고 묻자 87.8%(72명)는 ‘의사가 직접 전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2.4%(2명)는 ‘가족이 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간호사·가족이 함께 상의해서’라거나 ‘환자 성향에 따라 적절한 사람이 해야’ 등의 기타 의견은 9.8%(8명)였다.
이어 의료진이 받는 스트레스를 조사했다. ‘환자에게 3∼6개월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고 알릴 때, 받는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전혀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를 0점, 스트레스가 가장 극심한 상태를 100점으로 제시했다.
그랬더니 24.4%(20명)는 ‘90∼100’점, 29.3%(24명)는 ‘80∼89’점이라고 답했다. 절반 정도가 80점 이상인 ‘상당한 수위’의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이다. 70∼79점은 15.9%, 60∼69점은 10.9%, 50∼59점은 9.8%, 0∼49점은 8.5%로 나타났다. 기타는 1.2%였다.
가족이 함께한 자리서 의사가 직접 알려야
일부에선 말기 상황임을 알리는 데 적합한 인물로 목사, 신부 등 성직자를 꼽는다. 환자가 심리적 충격을 덜 받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다. 그러나 대다수는 환자에게 ‘말기’와 ‘죽음 예정’을 알리는 역할은 담당 의사가 맡아야 한다고 본다. 환자의 정신·심리·신체·사회적 상태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인 동시에 필요한 정보를 자세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대 윤영호 교수는 25일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설명할 경우 가족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며 “알려야 하는 심적 부담이 없고 나중에 속이거나 거짓 행동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족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상황을 말하는 게 좋다. 오해가 생기지 않고 가족이 더 편해진다. 윤 교수는 “의사의 정확한 설명이 환자를 잠시 당황하게 만들 수 있지만 오히려 사실을 잘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치료를 찾아 방황하지 않게 한다”고 했다.
환자가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의미하고 힘겨운 연명치료보다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말기 통고가 환자 삶의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생각은 기우다. 윤 교수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의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 말기 환자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첫걸음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웰다잉, 삶의 끝을 아름답게 2부 ⑨] 말기 암환자 42% 상황 몰라… 의사 ‘진실 메신저’ 역할 중요
입력 2016-04-25 2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