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6th Street Ⅰ’라는 작품을 보자. 네덜란드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의 추상회화 같기도 하고 요즘 열풍이 일고 있는 한국의 단색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진이다. 사진 위에 붓질을 했나 여기기 십상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냥 풍경이다. 한때 연예인 광고사진으로 인기를 끌었던 김우영(56·사진)의 작품이다. 그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홍익대 도시계획학과를 나온 그는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사진을 공부했다. 1990년대 중반 한국으로 돌아와 잡지사진과 광고사진을 촬영하며 유명 사진작가로 발돋움했다. 이영애가 모델로 나온 화장품 ‘헤라’, 송승헌과 소지섭의 풋풋한 모습이 담긴 의류브랜드 ‘스톰’ ‘닉스’ 등을 찍었다. 잘 나가던 그는 박수 칠 때 떠나듯이 2007년 다시 미국으로 갔다.
“한창때는 촬영대기 중인 연예인이 스무 명쯤 됐어요. 돈은 벌었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죠. 그래서 도망치듯 떠났어요. 지프 타고 미 대륙을 두세 달씩 횡단하며 닥치는 대로 찍었어요.” 그러다 그의 눈에 들어온 곳이 캘리포니아의 데스밸리였다. 사막, 햇빛, 바람이 있고 버려진 공장이 있는 곳이었다. 폐허와 생명이라는 두 주제를 ‘도시’라는 테마로 담았다.
‘상업 사진가’에서 ‘순수 사진가’로 돌아온 그가 28일부터 서울 강남구 청담대로 박여숙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Along the Boulevard’(대로변을 따라)라는 타이틀로 2007년부터 9년간 캘리포니아와 미시간 디트로이트에서 촬영한 사진 22점을 선보인다. 산업화를 거치며 몰락한 도시의 양면을 찍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색채를 렌즈에 담다보니 추상회화처럼 됐다.
그는 “폐허가 된 곳도 예술가들의 시선으로 보면 새로운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며 “작품 속 풍경은 선과 면으로만 보이지만 안쪽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사진 속 핑크색으로 도배된 건물, 하얀 벽면 앞에 흩날리는 붉은 꽃잎, 공장 굴뚝 아래의 파스텔톤 풍경 등 몽환적인 이미지를 통해 도시의 재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올 가을엔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1916∼1984)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 성북구 최순우 옛집에서 개인전을 연다. 그는 “한국의 자연과 건축물 사진들을 도시와 문화유산의 관점에서 펼쳐 보일 것”이라며 “나중에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도시 풍경도 작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화적이면서도 추상적인 그의 신작은 5월 20일까지 전시된다(02-549-7575).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연예인 대신 도시풍경을 찍다… ‘김우영 개인전’ 내달 20일까지
입력 2016-04-24 2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