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의 ‘루살카’는 여러모로 관심을 끈다. 체코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작품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데다 지난해 취임한 김학민 단장이 직접 연출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왕자 역으로 국내 데뷔 무대를 갖는 테너 권재희(35)의 존재다. 권재희는 오는 10월 이탈리아 토리노극장 제작 ‘라보엠’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는 등 유럽에서 주목받는 신인이다.
‘루살카’ 연습이 한창인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권재희를 만났다. 경북 안동 출신인 그는 경북대 음대 재학 시절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유학의 꿈을 미뤄야 했다. 대신 신문배달, 편의점 직원, 전화상담원, 술집 웨이터, 공장 노동자 등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2007년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지역 신문에서 우연히 이탈리아 로마의 사설 아카데미가 장학생을 선발한다는 기사를 보고 지원해, 1위를 차지했다. 그의 재능을 아까워한 후원자들이 나서면서 꿈에 그리던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2009년 그는 권위있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아카데미에 응시해 합격했다. 이곳에서 스승이자 은인인 세계적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를 만났다. 권재희는 “아카데미 시험에서 긴장한 나머지 하이C(테너의 최고 음역대)를 내다가 실수했다. 그런데 프레니 선생님이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다’며 기회를 주신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다”면서 “입학 후 프레니 선생님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혼내지만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이 아카데미를 방문했을 때 나를 불러서 노래를 시키는 등 많이 아껴 주셨다”고 말했다.
이후 바렌보임이 지휘하고 스타 성악가들이 출연하는 스칼라 아카데미 갈라 콘서트에 세계적인 테너 주세페 필리아노티를 대신해 무대에 서게 됐다. 2013년에는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콘서트 오페라 ‘아이다’와 2014년 ‘아이다’ 이탈리아 투어에서 잇따라 주역을 맡았다.
그는 최근들어 ‘아이다’의 라다메스와 ‘투란도트’의 칼라프 등 동양인 테너들에게 흔히 주어지는 역할을 거절하고 ‘라보엠’의 로돌포, ‘라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등 서정적인 테너의 역할을 맡고 있다. 권재희는 “이 때문에 대형 무대에도 설 수 있었던 기회를 잃기도 했지만 오래오래 노래하기 위해 커리어를 신중하게 쌓고 있다”고 답했다.
체코판 인어공주 이야기로 불리는 ‘루살카’는 왕자를 사랑했던 물의 요정 루살카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체코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자주 공연되지는 않지만 ‘달에게 바치는 노래’ 등 아름다운 아리아가 많다. 루살카 역에 소프라노 이윤아와 서선영, 왕자 역에 테너 김동원과 권재희 등이 출연한다. 28일부터 5월 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장지영 기자
꽃집 알바하던 청년, 세계 오페라계 샛별로… ‘루살카’ 출연하는 테너 권재희
입력 2016-04-24 2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