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 박윤선(1905∼1988) 목사. 평신도들에겐 그다지 친숙한 이름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주석가로서, 신학자로서, 목회자로서 한국교회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1949년 4월 요한계시록으로 시작해 79년 10월 에스더를 끝으로 완성한 성경주석이 그의 대표작이다. 최근 그의 이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가 남긴 성경 66권 전체 주석의 핵심을 추린 ‘정암 박윤선 주석성경’이 출간되면서다. 박 목사의 생애와 그가 남긴 신학적 유산을 알리는 일에 매진해온 기독출판 영음사 대표회장 안만수(78) 목사를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시 영음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번에 출간된 주석성경에는 박 목사의 개혁주의 신학정신이 고스란히 집약돼 있다고 들었다.
"박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의 본뜻대로 해석해서 그대로 믿고 실천하는 개혁주의 성경관을 고수했다. 성경만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 확신하고 그대로 믿고 그대로 살려고 애썼다. 지금 한국교회에선 성경의 진리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게 아니라 다른 무엇, 기복신앙이나 인간 공동체의 교제와 유익 등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희망이다'는 메시지를 변함없이 외쳤던 박 목사의 개혁주의 성경관은 여전히 유효하고 의미가 크다."
-박 목사의 삶에는 놀라운 면이 많다. 성경 66권 주석을 발간했고, 성경연구를 위해 영어는 물론이고 히브리어, 네덜란드어까지 섭렵했다고 들었다.
"한마디로 예수에게 붙잡혀 자기는 없이 오직 주의 일만 했던 분이다. 율법에서 해방돼 생명을 내놓고 평생 원하는 성경해석 사역을 한 것이다. 주변에서 말로는 '박윤선' '박윤선' 하지만, 그 신학의 깊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박 목사는 네덜란드 개혁신학도 국내에 최초로 소개했다. 1936년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칼뱅주의 신학을 공부하며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같은 개혁신학자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 네덜란드어를 독학했다. 5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에서 신약성서를 연구했지만 아내가 교통사고로 숨지면서 중단됐다. 개인적인 삶보다 성경연구에 평생을 바친 분이었다."
-교단은 물론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어 많은 목회자들이 '박윤선 주석을 봤다'고 말한다.
"한국교회 초창기는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요즘처럼 다양한 주석서를 보기 힘들던 시절이었다. 박 목사는 강단에 서는 목사들에 포커스를 맞춰 주석을 했기 때문에 설교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 최성규 인천순복음교회 목사가 젊었을 적, 설교 준비로 답답함을 호소하자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가 '박윤선 주석을 보라'고 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전병금 강남교회 목사도 '다른 건 안 봐도 박윤선 주석은 꼭 찾아본다'고 했다. 그만큼 신학의 폭이 넓다는 얘기다. 교회 목회자와 지도자 88명을 만나 박 목사에 대해 들으려 했는데 여기저기서 나도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총 140명을 만났다. 그분들이 박 목사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를 기록한 게 '박윤선과의 만남' 1·2·3권이다."
-박 목사와는 어떻게 알게 됐나.
"나는 박 목사를 잘 몰랐다. 사업할 때, 박 목사가 성동성모병원에 입원했는데 원무과장이 친구라 도와드리러 간 게 첫 대면이었다. 80년대 합동신학교에서 뒤늦게 신학을 공부해 화평교회를 개척했다. 박 목사가 서울 장승배기에 개척한 장안교회와 합쳤지만 화평교회란 이름으로 계속 시무했다. 나는 막차를 탄 셈이다. 하나님이 그런 지혜를 주시면 옹고집에 외골수라 생각할 수 있는데 박 목사는 어린애 같으셨다. 동물을 좋아해 서울대공원에 모시고 간 적이 있다. 기뻐하며 한참 구경하시더니 갑자기 나무 밑에 와 앉아계셨다.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거기에 마음을 팔린 게 주님한테 죄송해서 그런다'고 했다. 암 투병 중에도 학생들을 가르치러 가겠다고 해서 신발을 감췄더니 슬리퍼를 끌고 가셨다. 그런 열정과 순수함이 있었기에 그분 설교는 늘 은혜가 됐다."
-중국어로 '박윤선 주석'을 번역, 출간해 보급하는 사역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에 부흥의 불길이 번지면서 이단과 사설, 거짓도 마구 들어가고 있다. 중국에선 성경을 바로 해석하고 거기에 기초해 설교하고 성도들을 양육해 말씀대로 살도록 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박윤선 주석'이 중국 선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안 목사는 인터뷰 내내 박 목사 이야기만 했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박 목사의 딸 박혜란(75) 목사가 쓴 '목사의 딸'에 대해서는 "상처나 아픔은 이해하지만, 목사 안수까지 받은 분이 그렇게 비판과 정죄만 해야 하는지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럼에도 '꼭 해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이 일에 매진해온 그의 열정이, '박윤선' 이름 석자를 한국교회가 여전히 기억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수원=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오직 복음 만이 희망이란 메시지 이 시대에 절실”
입력 2016-04-24 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