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놓고 영국에서 찬반 여론이 팽팽한 가운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문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은 6월 23일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를 할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21일(현지시간) 런던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의 공식 방문 목적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90세 생일 축하다. 하지만 영국에 머무는 사흘 내내 오바마 대통령의 일정은 영국의 유럽연합(EU) 잔류 필요성을 영국 국민에게 설득하는 것으로 짜여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선 방문일에 맞춰 일간 텔레그래프에 기고문을 냈다. 그는 기고문에서 ‘친구이자 우방’으로서 영국이 EU에 남아야 하는 이유를 열정적으로 제시했다. 조심스러운 외교적 발언과는 판이했다. 그는 “솔직히 친구로서 말하건대 영국인들의 결정은 미국에도 깊은 관심사”라며 “(1,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해) 유럽의 공동묘지에 묻혀 있는 수만 명의 미국인은 두 나라의 번영과 안보가 얼마나 긴밀히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무언의 증명”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EU는 민주주의, 법치, 열린 시장 등 영국의 가치와 관행을 유럽과 주변에 전파하는 데 도움을 줬다”면서 “EU는 영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증대시킨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유럽이 정보와 반테러 분야, 그리고 경제 성장을 위해 협력하는 것은 영국이 EU에 머무를 경우 더욱 효과적인 결과를 낼 것”이라며 “강한 유럽은 영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손상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리더십을 더욱 강화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39년 조지 6세를 만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건배사까지 인용하며 2차 세계대전 당시 양국의 협력을 상기시켰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당시 “미·영 양국이 공유한 가치만큼 문명과 인류의 복지 향상에 기여한 것이 없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2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의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과 23일 청년과의 대화 등 행사에서도 영국의 EU 잔류를 주장하는 캐머런 총리 등 ‘잔류파’에게 힘을 실어줄 예정이다.
미국 정부는 영국이 EU를 탈퇴했을 때의 경제적 파장을 시사하며 경고성 메시지도 빼놓지 않고 있다. 한 백악관 관리는 뉴욕타임스(NYT)에 “일부 영국인이 생각하는 미국과 영국 간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미국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못 박았다. 이는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과 EU 사이의 FTA인 환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에 소외될 것을 우려하는 영국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탈퇴 찬성론자가 내세우는 ‘미·영 양자 FTA’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지난 17일 2008명을 대상으로 한 리서치 업체 ICM의 여론조사 결과 ‘EU 잔류’ 응답은 43%, ‘EU 탈퇴’는 44%로 사실상 동률이었다. 하지만 지난 2일 일간 가디언 자매지인 옵서버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EU 탈퇴 찬성(43%)이 탈퇴 반대(39%)보다 높게 나왔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22일 윈저성에서 구순을 맞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오찬을 함께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한 1952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제33대 해리 트루먼이었다. 여왕은 44대인 오바마 대통령까지 모두 12명의 미 대통령을 만난 셈이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
英 건너간 오바마 ‘브렉시트’ 물길 돌려놓을까
입력 2016-04-23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