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예방이 아닌 전쟁 합리화에 악용… ‘정당한 전쟁론’ 1600년 만에 바뀌나

입력 2016-04-24 19:07 수정 2016-04-24 22:19
‘정당한 전쟁론’이 시대적 변화에 따라 평화주의로 바뀌고 있다. 사진은 이라크전 반대 시위 모습.국민일보DB
‘의로운 이유를 위해, 통제된 수단을 사용해, 성공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를 갖고 싸우는 전쟁.’ 이른바 ‘정당한 전쟁’의 정의이다. 2003년 발발해 7년 반을 끌었던 미국의 대 이라크전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일부 우파 기독교인들은 전쟁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며 찬성했다. 정당한 전쟁론은 4세기 세계 기독교의 교부(敎父), 아우구스티누스가 기독교화해 발전한 이론으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수용하고 있다. 정당한 전쟁론은 16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최근 흔들리고 있다.

24일, 미국가톨릭리포터에 따르면 로마 가톨릭 단체인 ‘정의와 평화를 위한 교황 협의회’와 ‘팍스 크리스티’는 평화 문제 관계자, 학자들과 콘퍼런스를 열고 가톨릭교회가 지금까지 지지해 온 정당한 전쟁론을 거부하는 대신, 정당한 평화론을 공식 채택하도록 교황에게 요청하는 문서를 전달할 계획이다. 이들은 성명을 내고 “정당한 전쟁론이 전쟁을 예방하는 대신 지지하는 근거로 빈번하게 사용됐다”며 “분쟁 현장에서 비폭력적 변혁을 위한 능력과 도구를 약화시켰다”고 발표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내부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은 세 가지가 존재한다. 급진적 평화주의와 정당한 전쟁론, 상대적(핵) 평화주의 등이다. 급진적 평화주의는 16세기 재세례파 이후 퀘이커교도와 메노나이트파, 모라비아파, 소수 개혁주의 교회들이 지지하고 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5∼7장)에 근거해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저항과 비폭력의 길이라 결론짓는다. 전쟁이 기독교적 순종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당한 전쟁론은 구약의 거룩한 전쟁(聖戰) 개념이 기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이어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가 체계화했으며 16세기 비토리아의 프란시스코가 발전시켰다. 대부분 종교 개혁가들도 인정했다. 정당한 전쟁은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동기가 의로워야 하며 수단이 통제돼야 하고 결과가 예측 가능해야 한다.

상대적 평화주의는 핵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일단 핵전쟁이 벌어지면 사상자 수는 수억명에 이를 것이며, 피해자도 군인에 국한하지 않는다. 따라서 핵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여기엔 하나님께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잠 6:17)’ 손을 미워한다는 성경적 근거가 따라붙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세 가지 이론이 기독교 내부에서 일치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전쟁 이론은 절대화될 수 없으며 오히려 상황에 따라 변화해왔다고 본다.

장로회신학대 성석환 교수는 “정당한 전쟁론 대신 평화주의를 채택하려는 움직임은 최근 기독교윤리의 방향이 근원적으로 재구성되는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최근 공적 영역에 대한 종교의 역할론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톨릭이 먼저 발 빠르게 변화를 선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