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관리실 원장,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과 남편….
대전에 사는 김지헌(46)씨는 그저 평범한 주부다. 그런 그녀는 한화 이글스의 프로야구 경기만 시작되면 180도 돌변한다. 한화 이글스 팬으로서 이글스의 승패에 따라 고함과 웃음, 슬픈 눈물을 쏟는다. 야구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광적인 야구 마니아이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홈경기에 김씨는 어김없이 ‘출석체크’를 했다. “겨울 내내 프로야구만 기다렸어요.” 9533명의 관중 속에서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김씨의 별명은 ‘눈물녀’다. 2011년부터 한화를 응원하며 만년 꼴찌인 한화를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한화 선수들이 끝까지 투혼을 발휘해도 끝내 지고 난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TV 중계방송 카메라에 포착된 뒤 생긴 이름이다.
매년 60경기 이상 홈경기를 직접 운동장에 나가 관전하고 가족과 여행 삼아 한화의 원정경기 응원에 나서는 열혈 여성이다. 야구장에 직접 갈 수 없을 때는 한화 팬클럽 회원 40여명과 치킨집이나 고깃집에 모여 ‘원격 응원’을 펼치기도 한다.
김씨의 고향은 부산이다. 그래서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했다. 5년 전까지도 충성스러운 롯데 팬이었지만 남편의 고향 대전에서 가정을 꾸린 뒤 2011년부터 한화 팬으로 돌아섰다. 그녀에게 야구는 여가가 아닌 인생이다. “이기든 지든 마지막까지 웃고 응원하는 한화의 팬문화가 내 아이들한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서울 잠실구장의 홈 개막전에선 남자친구와 함께 두산 베어스 커플모자를 쓴 회사원 황미진(28)씨가 전광판에 잡혔다. 황씨는 두산이 공수 교대의 짧은 순간에 진행한 이벤트에서 ‘미녀 관중’으로 뽑혔다. 두산 관중은 황씨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황씨는 원래 야구팬이 아니었다. 넥센 히어로즈 홈구장인 고척 스카이돔 주변에 사는 황씨가 굳이 두산을 응원할 이유도 없었다. 두산의 골수팬인 남자친구를 따라 잠실구장을 찾은 지난해부터 두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선수들의 뚝심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산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챔피언이다.
황씨는 “집에서 혼자 중계방송을 시청할 때도 있다. 하지만 별로 재미가 없다. 야구장에서 관전하는 게 훨씬 재미있다. 여기서 먹는 치맥(치킨과 맥주)의 맛은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황씨는 두산의 홈 3연전 중 한 경기는 반드시 야구장에서 관전한다. 1주일에 한 번꼴이다.
황씨는 전광판 이벤트 경품으로 받은 맥주를 주변 관중에게 나눠줬다. 황씨는 “그래야 기쁨이 두 배가 된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사람들이 관중석 곳곳에서 축하 인사를 건네고 엄지를 치켜세우자 그녀는 행복감에 흠뻑 빠졌다.
“이렇게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 야구장의 묘미 아니겠어요?” 황씨가 프로야구를 기다린 이유다.
대전=김철오 기자, 박구인 기자kcopd@kmib.co.kr
야구 없인 못살아… 열혈 여성팬 2인의 예찬론
입력 2016-04-22 2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