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태원준] 망원동의 등장

입력 2016-04-22 17:33

커피 마시려고 줄 서는 건 제주도 ‘풍림다방’에서나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서울 망원동 ‘커피가게 동경’이 요즘 그렇다. 평일 저녁에 갔다가 줄이 길어 돌아섰고, 두 번째 갔을 때 20분쯤 기다려 그 드립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뭐랄까. 쓰다 달다 외엔 커피 형용사를 모르는 터라 누군가 인터넷에 남긴 글을 빌리면 ‘주말엔 기다리다 애도 낳겠다는 커피집에 가봤으니 그걸로 만족!’

혹시 누가 올까봐 숨겨놓은 듯 간판도 없는 이 집을 찾느라 망원동 골목을 제법 돌아다녔다. 그러다 피자집 ‘피제리아 이고’를 알게 됐고 디저트가게 ‘미완성식탁’에 들어가 봤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파스타집에서 와인도 한 잔 했다. 문을 연 지 짧게는 한 달, 길어야 1년인 가게들이 늦게까지 북적인다. 연립주택 밀집촌이던 망원동은 확실히 떴다.

“가수들이 다 떠나도 YG엔터테인먼트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이 말은 YG의 부동산 안목이 탁월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홍대 앞에서 놀 때 한 걸음 떨어진 합정동에 터를 잡았다. 홍대 상권은 세포 증식하듯 상수동 연남동 합정동으로 팽창했고 땅값과 임대료가 껑충 뛰었다. 그 일대 부동산을 꽤 사뒀는지 중개업자들이 YG를 가리켜 저런 말을 한다. ‘홍대 앞’은 이제 YG의 동네를 지나 망원동까지 왔다.

누군가 예쁜 커피집, 색다른 맛집을 차려 발길을 끌면 그런 가게들이 모여 동네에 색깔을 입힌다. 그 독특함은 값어치가 상당해서 건물마다 월세를 올리고 세입자를 갈아 치운다. 작은 상인들이 만들고 밀려난 자리에 거대 자본의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선다. 동네의 색깔은 이런 공식에 따라 변하기에 변색 과정이 끝나면 다 비슷해진다. 요즘 ‘변색 주기’는 5년쯤 될 것이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세입자 영업권을 5년 동안만 보호해주고 있다.

‘장미여관’의 보컬 육중완이 옥탑방에서 살던 동네,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에서 지질한 네 남자가 느릿한 삶을 지지고 볶던 곳이 색깔을 입기 시작했다. 망원동의 등장, 반가운데 앞날이 보이는 듯해 좀 안쓰럽다. 다음 달 전국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체결한다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양해각서(MOU)가 그 색깔을 지켜줄 수 있을지….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