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옥시 한국지사, 英 본사에 수시 보고”

입력 2016-04-22 00:28 수정 2016-04-22 04:00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관계자는 21일 “수사 전선을 넓혀가고 있다”고 밝혔다. 살균제 사망 사건 책임을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영국 본사에 물을 수 있는 단서를 포착한 데 따른 것이다.

옥시 영국 본사는 그동안 ‘제품 판매는 한국지사에서 해온 것이며, 본사와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검찰은 최근 옥시 한국지사의 이메일 복원 등을 통해 영국 본사의 개입 정황을 포착했다. 영국 본사가 한국지사로부터 가습기 살균제 파문과 관련한 보고를 수시로 받았으며, 지시를 내린 증거들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향후 검찰의 수사는 투 트랙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한국법인의 살균제 제조·판매의 과실 규명’과 ‘옥시 영국 본사 측의 조직적 증거인멸’이다. 특히 우리 보건 당국이 역학조사 등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확인한 2011년 이후 영국 본사가 한국지사의 증거인멸과 대책 수립에 개입했다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2001년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책임은 옥시 한국지사에 있지만 유해성이 확인된 이후 불거진 축소·은폐 과정에 대해서는 영국 본사의 책임을 물을 여지가 크다.

실제 옥시 영국 본사는 2005년 이후 한국지사 경영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가 속출했던 2005년 6월부터 2010년 5월까지 한국지사 대표이사를 지낸 미국인 리존청을 시작으로 2010년 인도인 거라브 제인, 2012년 인도인 샤시 쉐커라파카 등 외국 임원이 다녀갔다. 현재는 방글라데시인 아타울라시드사프달이 대표로 취임한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증거인멸이 새로운 범죄가 된다면 그건 의사결정을 내린 영국 본사의 문제”라고 책임소재를 명확히 했다.

검찰이 지난 20일 옥시 인사 담당자를 첫 소환자로 부른 이유도 영국 본사와 파견근무자, 해외 연구지사에서 일했던 지휘라인 등 옥시의 복잡한 인사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 검찰은 증거인멸을 지시한 고위층, 한국에서 판매된 제품 안정성 관련 실험을 한 옥시 해외 연구소 연구원 등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검찰은 최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모임’의 협조를 얻어 피해자 집 2곳에서 현장검증을 진행하기로 했다. 실생활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을 때 일어나는 유해물질의 공기 중 농도 변화,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검찰은 피해자 상당수가 외부 환기를 꺼리는 봄과 겨울에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에 따른 공기 질 악화가 실험실보다 가정에서 훨씬 심각했을 것으로 본다.

황인호 이경원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