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 어버이연합의 ‘관제데모’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탈북자를 시위 알바로 동원했다는 논란에 이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어버이연합에 자금을 댔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청와대가 정부입장 지지 시위를 의뢰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청와대와 어버이연합은 관련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어버이연합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버이연합에 대한 일련의 의혹 중 허위사실이거나 왜곡·과장된 부분이 많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적대응 등을 통해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앞서 시사저널은 퇴직경찰 모임인 대한민국재향경우회(경우회)와 한 선교복지재단이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에 자금을 댔다고 보도했다. 이후 전경련이 선교복지재단 계좌를 통해 어버이연합에 억대 자금을 지원했다는 증거가 나왔다. 전경련은 2014년 9∼12월 세 차례에 걸쳐 1억2000만원을 선교복지재단 계좌로 입금했다. 해당 재단은 수년 전 문을 닫은 상태였고, 전경련은 특정 종교단체 지원을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 게다가 이 돈이 어버이연합 사무실 임대료 등에 쓰인 흔적이 드러나면서 선교재단 계좌가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의 차명계좌라는 의심도 커지고 있다.
어버이연합은 2014년 2월 임대료가 밀려 건물주가 사무실 사용을 막아 잠시 문을 닫기도 했다. 그런데 자금난을 겪던 어버이연합이 같은 해 5∼11월 39차례나 연 세월호 반대집회에 일당 2만원을 주고 탈북자를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급액은 총 2518만원에 이른다. 어버이연합은 “함께 참여한 ‘탈북어머니회’가 건넨 돈을 교통비로 지불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어버이연합 이규일 지부장은 기자회견에서 “‘정부에서 돈을 많이 받았다’ ‘전경련에서 받았다’는 이상한 소리들을 하는데 우리는 지원받지 않았다”며 “출근할 때 파지와 소주병 등 주워 운용자금으로 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경련은 1억2000만원 지원 사실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경우회는 2014년 12월 ‘반국가 종북세력 대척결 26차 국민대회’를 주최하며 탈북난민인권연합에 500만원을 전달한 사실을 시인했다. 다만 “교통비 명목으로 지급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어버이연합은 청와대의 ‘시위 지시설’도 반박했다. 어버이연합 측은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뿐 누구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어버이연합 핵심인사 발언을 인용해 “청와대가 올해 초 한·일 위안부 합의안 체결과 관련해 지지 집회를 열어 달라고 했으나 어버이연합이 거부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청와대는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시위 지시설)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지시의 당사자로 지목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소속 행정관 H씨도 “해당 언론 보도는 오보이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버이연합은 당시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을 환영했다”며 “어버이연합은 지난 1월 6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부근에서 위안부 합의 체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도 했다. 당시 시민단체인 효녀연합과 대치해 언론에 크게 부각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H씨는 시사저널 보도와 관련,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해당 행정관이 22일 법원에 시사저널의 출간배포금지 가처분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보수 입장을 대변해 온 어버이연합의 ‘뒷선’과 관련된 의혹이 커지자 야권의 공세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국민의당 김재두 대변인은 “청와대 등 권력기관과 전경련 그리고 보수단체가 관제데모를 일삼아 왔다는 것은 민주주의 질서를 정면으로 도전한 사건”이라고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도 22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서울중앙지검에 전경련의 어버이연합 자금 지원 의혹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경실련은 “전경련이 어버이연합 차명계좌를 이용해 자금을 지원한 것이라면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박은애 김판 신훈 남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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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 ‘관제데모’ 의혹 확산… ‘전경련 자금 제공’ 사실로 드러나
입력 2016-04-21 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