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연장 NO… 정부 ‘좀비기업’ 칼 댄다

입력 2016-04-21 21:28

정부의 구조조정 드라이브에 은행들이 바빠졌다. 지난해 신용위험 평가에서 C·D등급으로 분류된 229개사(대기업 54개+중소기업 175개) 중에서 구조조정 대상을 선별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 채권은행들은 선별 기준을 강화하고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 고삐를 죄고 있다.

C등급으로 분류된 97개사 중 50개사가 이미 워크아웃에 들어갔거나 채권단과 구조조정 협의를 벌이고 있다. 정부는 기촉법 시한이 2년이기 때문에 C·D등급 기업의 수명을 연장하기보다 기간 내에 수술을 하겠다는 의지다.

은행들은 지난해 결산 실적이 확정된 이번 달부터 본격적인 구조조정 대상 선별에 착수했다. 대기업은 6월까지, 중소기업은 11월까지 순차적으로 선별해 채권단이 주도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만들어 집행한다.

정부는 은행에만 맡기지 않고 공급과잉이 우려되는 산업은 부실이 드러나기 전에 먼저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해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필요할 경우 정부가 직접 기업의 퇴출 여부까지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채권단이 주도해온 ‘시장친화적인 구조조정’이 정부 주도의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대표적 부실 산업인 조선·해운업에 돈을 쏟아부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동조선해양이다. 2010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성동조선에 수출입은행은 지난해까지 1조8000억원을 지원했다. 채권단 전체 지원금은 2조원이 넘는다. 그러나 조선업계의 불황이 길어지면서 경영 정상화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성동조선은 올해 단 1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채권단은 2019년까지 72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추가 지원하기로 약정을 한 상태이지만 감사원은 성동조선 지분 70.71%를 보유하고 있는 수은의 부실 지원 여부에 대해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구조조정의 칼을 적극 휘두르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올해 초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과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이 정부의 양 손에 쥐어진 칼이다.

기촉법은 채권단 전체의 동의가 없어도 워크아웃을 시작할 수 있는 법이다. 현대상선 한진해운 대우조선해양 등 해운·조선업계의 채권이 산업은행에 몰려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가 부실기업의 사활을 결정할 수 있는 셈이다. 유일호 부총리가 현대상선에 대해 법정관리를 언급한 것도 이런 수단을 동원해 구조조정을 서두르겠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기활법은 부실이 드러나기 전이라도 관련 산업에 공급과잉이 발생하거나 세계시장이 침체되면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는 수단이다.

정부가 구조조정 대상 산업으로 선정한 산업 중 건설·철강·석유화학은 지난해 실적이 개선됐지만 정부는 기활법을 동원해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일시적으로 경기가 나아졌다고 해서 공급과잉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며 “특정 기업의 사활을 결정하기보다는 먼저 구조조정에 나서면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산업 재편을 꾀한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밀어붙이기가 갑작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총선 전부터 이미 구조조정 대상 기업 선별 작업과 채권단 협의 등이 진행돼 왔는데 일방적으로 일정을 앞당기거나 돈줄을 죄기 어렵다는 것이다. 해운업계의 경우 상반기 내 용선료 협상과 채권단 협상을 완결하도록 시한을 정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신용위험 평가도 앞당기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은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되는 순간 돈줄이 막히고 직원들도 불안해한다”며 “기업과 금융회사, 정부 간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부정적인 영향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지방 백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