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방’ 사우디, 대놓고 오바마 푸대접

입력 2016-04-21 19:21 수정 2016-04-21 21:55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위 사진 왼쪽)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20일(현지시간)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에르가궁에서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사우디는 이날 오후 오바마 대통령이 리야드 킹칼리드 공항에 도착했을 때 리야드 주지사를 보내 영접한 반면((1)), 오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넘버2’인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예드 왕세자가 왔을 땐 살만 국왕이 직접 공항에 나갔다((2)). AP뉴시스·카리즈타임스

1박2일 일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70년 맹방인 사우디로부터 눈에 띄는 홀대를 받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과 미국 CBS방송은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중 마지막 중동여행이 빛을 바랬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7월 이란 핵협상 타결 이후 틀어진 양국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걸프국협력회의(GCC) 정상회담 참석차 사우디 방문에 나선 오바마 대통령은 수도 리야드 킹칼리드 공항에 도착한 뒤 의전에서부터 냉대를 당했다. 공항에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 대신 리야드 주지사인 파이잘 왕자와 아델 알주바이르 외무장관이 나왔다. 사우디는 통상 외국 정상이 오면 국왕이나 왕위계승 서열 1위인 모하마드 빈나예프 왕세자가 영접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과 지난해 초 방문했을 때도 살만 국왕이 직접 공항에 나갔다. 특히 살만 국왕은 몇 시간 전 GCC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리야드에 도착한 걸프국 정상들을 공항에서 직접 맞이해 대조를 이뤘다. GCC는 사우디 주도로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오만이 참여하고 있다.

CBS방송은 “영접단도 몇 사람에 그치는 등 규모가 극히 작았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사우디가 오바마 대통령을 ‘대놓고 푸대접했다(noticeably low key reception)’고 꼬집었다.

현지 언론도 오바마 대통령 방문을 소홀히 취급했다. 사우디 국영TV는 다른 걸프국 정상들이 도착할 때는 생중계를 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도착 모습은 방송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바마 대통령은 에르가궁에서 살만 국왕을 만났을 때 “환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살만 국왕은 회담 때 표정이 밝지 않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사우디의 ‘계산된 홀대’는 미국이 사우디의 숙적 이란과 관계개선을 한 뒤 생긴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 BBC방송은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0일 언론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이란과 이웃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촉구한 것에 사우디 왕가가 크게 분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랍 언론 알아랍 알알라미야는 “사우디는 오바마 대통령을 곧 물러날 힘없는 정상으로 취급하며 차기 대통령과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한다”고 분석했다. 사우디는 미 의회가 9·11테러 희생자들이 사우디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법안을 추진하는 것에도 불만이 크다.

오바마 대통령은 21일 열린 GCC 정상회담에서 이슬람국가(IS) 척결 대책, 시리아 문제, 이라크 전후 복구 지원을 논의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특히 미국은 사우디를 달래기 위해 미-GCC 합동으로 해상순찰을 펼쳐 이란에서 예멘으로 가는 무기를 차단키로 합의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