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꽁꽁 숨겨… 공소 시효 끝난 줄 알고 도난 삼국유사 경매 의뢰 ‘덜미’

입력 2016-04-21 20:53
1999년 도난당한 보물급 문화재인 삼국유사 목판본을 15년간 숨겨온 문화재 매매업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공소시효가 끝난 줄 알고 경매에 내놨지만 착각이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도난당한 문화재를 숨긴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김모(63)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1일 밝혔다. 김씨가 숨겨온 ‘삼국유사 권2 기이편’은 원래는 대전의 한 대학교 한문학과 교수가 소장한 것이었다. 1999년 교수의 집에 강도가 들었을 때 도난당한 뒤 행방이 묘연했다.

김씨는 2000년 1월 삼국유사를 입수한 뒤 그동안 자신의 아파트 욕실 천장에 만든 수납공간에다 몰래 넣어뒀다. 그는 공소시효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정성스레 보관해 왔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빚을 갚기 위해 고미술 경매업체에 경매를 의뢰했다. ‘삼국유사 권2 기이편’의 경매 시작가격은 3억5000만원에 달했다. 그는 경매에 내놓으면서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소시효 계산이 틀렸다. 1999년에 벌어진 특수강도 사건의 공소시효는 2009년 1월 끝났다. 다만 문화재보호법상 은닉죄는 은닉상태가 종료되는 경매 출품 의뢰일인 지난해 11월부터 공소시효가 시작된다. 김씨는 도난 문화재로 드러나자 “이미 사망한 골동품업자로부터 9800만원을 지불하고 취득했다”고 말을 바꿨다.

삼국유사는 고려시대 일연이 편찬한 삼국시대 역사서다. 이번에 경찰이 압수한 ‘삼국유사 권2 기이편’은 보물로 지정된 성암고서본(보물 제419-2호), 연세대 파른본(보물 제1866호)과 함께 조선 초기에 제작된 동일 판본이다. 상암고서본에 비해 보관상태가 좋아 문화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문화재청은 수사가 끝난 뒤 당초 소유했던 교수의 딸에게 돌려줄 계획이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