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게도냐인’ 이수정 선교사, 한국인 첫 주기도문 번역했다

입력 2016-04-21 18:16 수정 2016-04-22 18:02
‘우리 아버니 하늘의 계옵시니’로 시작하는 이수정의 주기도문은 세로 9줄에 총 161자로 이루어져 있다. 박용규 한국기독교사연구소장은 이수정 주기도문이 한국인뿐 아니라 미국 선교사들에게도 복음의 접촉점을 만들어줬다고 평가했다. 작은 사진은 이수정 선교사.한국기독교사연구소 제공
미국성서공회가 발간한 잡지 ‘바이블 소사이어티 레코드’의 1885년 5월호에 실린 이수정의 주기도문(빨간 원). 이수정은 한국인 최초로 주기도문을 번역한 것으로 밝혀졌다. 강민석 선임기자
‘조선의 마게도냐인’(행 16:9) 이수정(李樹廷·1842∼1886)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주기도문을 번역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용규 한국기독교사연구소장은 20일 서울 중구 영락교회 한경직기념관에서 이수정의 주기도문 번역본이 실린 ‘바이블 소사이어티 레코드(BSR)’의 내용과 사진을 공개했다. BSR은 미국성서공회가 발간한 잡지로 1885년 5월호에 ‘THE LORD’S PRAYER IN COREAN’이라는 제목으로 한글로 된 이수정 주기도문을 게재했다.

‘우리 아버니 하늘의 계옵시니’로 시작하는 주기도문은 세로 9줄에 총 161자로 이루어져 있다.

박 소장은 지난해 여름 미국 동부 뉴헤븐의 고문서실에서 한국 관련 자료를 찾던 중 이 자료를 발견했다. 국내에는 1884년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의 주기도문 번역본만 알려져 있을 뿐, 이수정 주기도문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한글 주기도문이 처음 등장한 건 중국 동북지역에서 활동하던 로스 선교사가 번역한 마태복음이 1884년 출간되면서다. 박 소장은 “로스의 주기도문은 현대적 관점에서 평가해도 잘 번역된 것이지만 완전한 번역은 아니었다”면서 “이수정 주기도문이 로스 선교사의 주기도문보다 더 완성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수정 번역본은 로스역과 달리 주기도문 후반부에 등장하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까지 완역했다. 로스역에는 이 부분이 생략돼 있다.

박 소장은 이수정 주기도문이 1884년 즈음에 번역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수정이 직접 손으로 쓴 것을 미국성서공회에 보냈고 미국성서공회는 BSR에 그 내용을 게재한 것으로 보인다. 박 소장은 이수정 주기도문이 한국인뿐 아니라 미국 선교사들에게도 복음의 접촉점을 만들어줬다고 소개했다. 박 소장은 중국 서부 산시성에서 사역하던 미국성서공회 권서인을 통해 이수정 주기도문이 한국인 상인 5명에게 전달됐다는 기록이 BSR의 1885년 11월호에 실린 것을 찾아냈다.

박 소장은 “이수정은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에 오도록 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그가 미국교회에 선교사 파송을 호소한 편지가 1884년 2월호 BSR에 게재된 사실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한 달 뒤인 1884년 3월 세계선교보고서에 처음 실린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어 “이수정의 편지가 언더우드를 비롯한 미국의 젊은이들을 깨웠던 것처럼 그의 주기도문이 한국교회에 새로운 도전이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수정은 1882년 박영효의 수행원 자격으로 도일한 이듬해 일본 기독교인이자 농학자인 츠다센을 만나 복음을 접했으며 1883년 4월 세례를 받았다. 이후 미국성서공회 루미스 선교사 등의 권유를 받아 성경을 한글로 번역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이 성경을 들고 내한했다. 첫 선교사가 입국하면서 그 나라 말로 번역된 성경을 갖고 온 사례는 한국밖에 없다.

이수정은 미국교회를 향해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도록 호소했다. 그는 사도 바울의 환상에 나타난 마게도냐 사람(행 16:9)처럼 미국인 선교사들에게 선교사 파송을 강력히 요청했다.

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