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 외길 걸으며 화업 50년 맞은 박대성 화백 “소나무 대작 마치니 희열”

입력 2016-04-21 18:37
박대성 화백이 20일 경북 경주 솔거미술관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솔거의 노래’ 앞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대미술을 찾아 1990년대 중반 미국 뉴욕으로 떠났던 그는 귀국한 뒤 신라 화가 솔거의 일화가 어린 경주로 짐을 싸서 내려왔다.

“경주 남산 자락 소나무 숲에 작업실을 마련해 17년을 살았어요. 그런데도 소나무 그림으로 저런 대작을 한다는 건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그걸 이제야 해냈어요.”

소산(小山) 박대성(71) 화백의 표정이 홀가분해 보였다. 1966년 부산 동아대학 국제미술대전에 당선돼 등단했으니 화업 50년이 됐다. 70년대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을 휩쓸었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도 어른 키의 3배쯤 되는 각각 높이 5m, 6m 대작은 도전이었던 모양이다. 작업실이 위치한 삼릉 일대 소나무를 그린 ‘솔거의 노래’, 제주의 600년 노송을 그린 ‘제주 곰솔’ 등 소나무 그림 두 점이 각각 전시장 한 벽씩을 차지하고 있다. 가히 압도적인 광경이다.

수묵 외길을 걸어온 박 화백의 개인전 ‘솔거묵향-먹 향기와 더불어 살다’전이 경북 경주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 솔거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0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그 어려운 걸 해내고 나니 희열을 느꼈다. 동아시아에서 소나무 그림으로 이런 대작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지 대신 중국의 전통 종이인 옥판선지(玉板宣紙)에 그렸다. 한지보다 결이 고와 물기가 훨씬 빨리 번지는 탓에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다. 서릿발 같은 종이라 더욱 어려웠다. 사실적 묘사와 대담한 구도, 먹의 농담과 속도 있는 필력으로 그려낸 그의 수묵화는 그러나 전통의 필법을 거부한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중에 부모도 잃고, 왼쪽 팔도 잃었다. 중학교 진학조차 포기하고 독학으로, 곁눈질로 익혀온 수묵의 세계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대외비 필법’으로 그렇게 독자적인 경지를 이룩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수묵화는 실경과 사생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조선후기 진경산수를 개척한 겸재 정선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장에는 경주를 담은 작품뿐 아니라 겸재가 즐겨 그린 금강산, 베트남 하롱베이, 중국 장가계 등의 국내외 절경을 그린 작품들이 선보인다.

그가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전통을 추구하면서도 현대적인 변용이 한 화면에서 구현되고 있어서일 것이다. 소나무 그림에는 학이 노니는 이상향의 연못 풍경이 판타지처럼 들어 있기도 하고, 드론으로 찍은 듯한 산수도 있다.

그는 경북도립미술관인 솔거미술관이 지난해 개관할 때 800여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경주 사람’으로서의 도리”라고 했다. 그래서 더 뜻 깊은 이번 전시에는 산수뿐 아니라 꽃과 전통 도자기, 나전함을 그린 정물화, 추사 김정희 모택동 등의 서예를 본뜬 서예 작품들도 선보인다. 9월 25일까지.경주=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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