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의 남성이 뜨거운 석탄 위를 맨발로 걷는다. 표정은 차분하다. 뒤이어 20대 젊은이들이 이 중년 남성의 뒤를 따른다. 잔뜩 흥분한 표정이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우샘프턴 선수단이 2013년 7월 스페인 전지훈련 도중 연출한 풍경이다. 선수들의 정신력을 강화하겠다며 솔선수범한 남자는 현재 토트넘 호스퍼를 이끌고 있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44)다. 유럽 축구계는 그의 독특한 리더십과 용병술에 푹 빠졌다.
대니얼 레비(54) 토트넘 구단주는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로 구단을 경영한다. 일단 스타 영입에 인색하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하위리그나 외국리그에서 유망주를 데려와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올린 뒤 비싼 값을 받고 빅 클럽에 팔아 큰돈을 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마이클 캐릭(35·맨유), 디미타르 베르바토프(35·PAOK), 가레스 베일(27·레알 마드리드) 등 간판스타들은 빅클럽으로 떠났다. 그러나 토트넘은 적은 예산으로도 꾸준히 프리미어리그에서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이번 시즌엔 21일(한국시간) 현재 34경기에서 승점 68점으로 레스터시티(승점 73)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포체티노는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우선 포체티노의 과거를 살펴보자. 아르헨티나 출신인 그는 선수 시절 거칠면서도 영민한 센터백이었다. 1988년 7월 뉴웰스 올드보이스(아르헨티나)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에스파뇰(스페인)과 파리 생제르맹, 보르도(이상 프랑스)를 거쳤다. 2004년 1월 에스파뇰로 복귀해 2006년 7월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에스파뇰의 정신적 지주였다.
포체티노는 2009년 1월 강등위기에 몰려 있던 에스파뇰 사령탑에 올랐다. 그는 10경기에서 8승을 올리며 팀의 강등을 막았다. 스페인 축구 전문가 기옘 발라그는 “포체티노는 상대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며 “후방에서부터 시작되는 점유율 축구를 선호한다”고 평가했다. 포체티노는 예전부터 체력과 전방 압박을 중요시했다.
포체티노는 2012년 11월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에스파뇰을 떠났다. 프리미어리그 사우샘프턴은 2013년 1월 포체티노를 영입했다. 포체티노는 2012-2013 시즌 사우샘프턴을 강등으로부터 구해냈으며, 2013-2014 시즌엔 8위까지 올려놓았다. 그는 혹독한 훈련은 악명이 높았다. 하루에 세 차례나 훈련을 시켰을 정도다. 강한 훈련으로 단련된 사우샘프턴은 가장 많이 뛰는 팀이 됐다. 그는 2014년 5월 토트넘 지휘봉을 잡았다. 사우샘프턴의 팀 컬러는 자연스럽게 토트넘으로 옮겨졌다.
토트넘의 평균 연령 24.7세로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젊은 팀이다. 포체티노가 어린 선수들을 과감하게 발탁한 결과다. 그는 어린 선수들을 키우는 데 일가견이 있다.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이후 사우샘프턴과 토트넘의 잉글랜드 출선 선수 18명 중 10명이 국가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토트넘 주포 해리 케인(23)은 “포체티노 감독은 사우샘프턴에서 인상적인 철학을 보여 줬다. 어린 선수들을 발탁해 과감하게 중책을 맡기고 성공을 이끌어낸 모습은 아주 놀라웠다”고 감탄했다.
델리 알리(20)는 포체티노 덕분에 스타로 떠오른 대표적인 선수다. 공격형 미드필더 알리는 2013년 7월부터 2015년 2월까지 3부 리그 소속의 MK 돈스에서 뛰며 총 74경기에 출전해 22골을 기록했다. 빅 클럽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알리는 결국 토트넘을 선택했다. 그는 “아무리 중요한 경기라도 신예 기용을 두려워하지 않는 감독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크리스티안 에릭센(24)와 에릭 다이어(22)도 포체티노의 애제자다. 출전 기회를 잡은 어린 선수들은 감독의 배려에 보답하기 위해 그야말로 미친 듯이 뛰고 있다. 포체티노는 거액을 들여 외부에서 스타들을 사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손흥민(24)의 부진이다. 그는 이번 시즌 각종 대회에서 38경기에 출장해 6골을 기록 중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다. 손흥민은 최근 주전 경쟁에서 밀리고 있지만 실망하지 말고 다음 시즌을 대비해야 한다. 포체티노가 400억원의 몸값을 자랑하는 손흥민을 한 시즌만 쓰고 버리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태현 기자
‘포체티노 마법’… 토트넘 이번 시즌 레스터시티 이어 2위 자리 올라서
입력 2016-04-21 19:23 수정 2016-04-21 2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