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슈퍼리그에 한국 축구 혼 심는다

입력 2016-04-21 19:24
중국 슈퍼리그(1부 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사령탑은 모두 3명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고배를 마신 홍명보(47) 감독은 명예회복을 선언하며 항저우 뤼청을 맡았다. 장외룡(57) 감독은 충칭 리판에서 다시 한 번 슈퍼리그에 도전장을 던졌다. 지난 시즌 옌볜 FC를 슈퍼리그로 승격시킨 박태하(48) 감독은 또 돌풍을 예고했다. 슈퍼리그 사령탑 16명 중 중국인(3명)과 함께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인은 중국 축구에 한국 축구의 혼을 심고 있다.

홍 감독과 장 감독이 22일 항저우 황룡스포츠센터에서 이번 시즌 첫 한국인 맞대결을 벌인다. 5라운드가 끝난 현재 홍 감독의 항저우는 2승3패(승점 6)로 16개 팀 중 10위를 달리고 있다. 장 감독의 충칭은 1승3무1패(승점 6)로 9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두 감독이 맡은 팀들이 이번 시즌 개막 전 중하위권 또는 강등권으로 분류됐던 것을 감안하며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홍 감독은 지난해 12월 항저우 사령탑에 오른 뒤 색다른 실험을 하고 있다. 중국 축구에 한국 축구를 이식하는 것이다. 항저우는 슈퍼리그에서 독특한 팀이다. 우수한 자국 유망주들을 발굴해 주전을 꾸렸다. 쑹웨이핑 구단주는 갓 취임한 홍 감독에게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좋은 선수들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홍 감독은 훈련을 지휘해 본 뒤에야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선수들에겐 프로 의식과 근성이 없었고, 팀 내에 패배 의식이 만연했다.

홍 감독은 ‘우리는 약팀이니까 매번 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선수들에게 ‘너희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훈련은 물론 생활에 관한 부분에서도 많은 것을 바꾸려 했다. 한국 U-20 대표팀을 이끈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홍 감독은 선수들에게 세세한 부분들을 가르쳤다. 중국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지도자들은 세부적인 것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들은 특급 외국인 선수들을 활용해 좋은 성적을 올리는 데에만 열을 올린다. 홍 감독은 한국 축구대표팀 시절 추구했던 콤팩트한 축구를 광저우에서도 추구하고 있다. 물론 수세에 몰리는 경우도 많지만 수비에 치중하진 않는다. 빠른 공·수 전환과 전방 압박을 통해 공격적인 축구는 서서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장 감독은 이미 중국 팀들을 이끈 전력이 있다. 2011년 칭다오 중넝의 지휘봉을 잡아 안정된 수비와 빠른 속공으로 팀 순위를 6위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당시 팀 역사상 최고의 성적이었다. 2012년 다롄 아얼빈에 부임했으나 초반 4경기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자 자진 사퇴했다. 부진에 빠진 칭다오 중넝은 다시 장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장 감독은 그해 5월 다시 칭다오 중넝을 맡아 슈퍼리그에 잔류시켰다. 2013년 8월 칭다오 중넝을 떠난 장 감독은 2014년 10월부터 대한축구협회 상근기술위원으로 활약하다 지난 1월 충칭 사령탑에 올랐다.

충칭은 장 감독에게 팀의 체질을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계약 기간도 1년이 아니라 3년을 제시했다. 장 감독은 “구단과 2016, 2017 시즌에 팀을 만들어서 2018 시즌에 승부를 보기로 합의했다”고 말한 바 있다. 장 감독은 선수단을 장악하는 능력을 발휘해 충칭의 경기력을 크게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감독이 이끄는 옌볜은 연고지 날씨가 추워 5경기 중 4경기를 원정으로 소화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선전하며 1승2무2패(승점 5)를 기록 중이다. 지난 시즌 박 감독을 사령탑으로 맞은 가난한 구단 옌볜은 갑급 리그(2부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슈퍼리그로 승격했다. ‘옌볜의 기적’은 박 감독의 뛰어난 리더십 덕분이었다.

박 감독은 취임하자마자 한국과 다른 팀 문화부터 바꿨다. 지난 시즌 전지훈련 당시만 해도 선수들은 식사 시간에 밥을 따로 먹었다. 서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팀의 조직력은 모래알 같았다. 박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 “적어도 30분 동안 함께 모여 밥을 먹고, 밥을 먹으면서 동료들과 대화를 많이 하라”고 지시했다. 선수단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번 시즌엔 이임생(45) 코치와 하태균(29), 윤빛가람(26), 김승대(25)가 박 감독과 함께 반란을 꿈꾸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