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시절 아침에 눈을 뜨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대문 앞으로 나가 배달된 신문을 들고 오는 것이었다. 볕이 잘 들어오는 마루에 앉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기사를 읽으며 신문을 뒤적였다.
뜻도 음도 몰랐지만 쓸 만하다 싶은 한자를 연습 삼아 써보기도 했다. 그러면 어느새 아버지가 다가와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연습 삼아 써본 한자의 뜻과 음을 알려 주시기도 했다. 아버지는 한참을 곁에 앉아 지켜보다 아들이 신문을 덮으면 그제야 신문을 펼치셨다.
신문을 펼쳐 한 장씩 넘기는 모습이 퍽 멋있다고 느끼던 시절이었다. 무서운 존재였던 아버지가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니 더 열심히 했을 게다. 돌이켜보면 당시 신문을 보던 습관이 글을 읽고 쓰는 일에 익숙해지는 계기가 됐다. 또래들에 비해 한자를 꽤 많이 읽고 쓸 줄 알게 돼 중학생 시절 한문을 가장 쉬운 과목으로 여겼던 것도 신문 덕분이었다.
요즘도 집에는 아침마다 신문이 배달된다. 신문은 주로 아이 엄마가 본다. 아이 엄마는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꼼꼼히 보고 스크랩하고 가끔은 매섭게 평(評)한다.
신문 보는 엄마 아빠를 매일 보면서도 아이는 신문을 잘 읽지 않는다. 보는 척조차 하지 않는다. 신문을 펼쳐보는 게 더 이상 요즘 아이에겐 멋있거나 매력적인 모습이 아닌 것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에도 아이는 눈뜨는 순간부터 태블릿PC를 든다. 아이에게 세상의 소식은 태블릿PC 안에 있다. 신문은 더 이상 정보를 주거나 읽는 재미를 주는, 폼 나는 물건이 아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영국의 권위 있는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종이신문 발행을 중단했다. 한때 40만부를 넘었던 인디펜던트의 유료부수는 5만8000부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반면 온라인판의 하루 평균 트래픽이 지난해보다 22% 정도 크게 늘어나자 인터넷으로만 기사를 공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신문을 구독하는 가구는 점점 줄어든다. 신문을 꼼꼼히 읽는 중장년층의 모습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종이신문의 몰락은 더 이상 뉴스조차 아니다. 지금 미디어업계가 주목하는 부분은 독자들이 이제 PC로도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미국신문협회(the Newspaper Association of America)가 인용한 컴스코어(comScore) 데이터에 따르면 2014년 1월엔 모바일 기기로만 디지털 뉴스사이트에 접속하는 성인 순방문자(unique visitors)가 3930만이었는데 2015년 1월에는 이 숫자가 6800만을 넘어섰다. 반면 PC(데스크톱 혹은 랩톱)를 통해서만 디지털 뉴스에 접근하는 방문자들의 비율은 2014년(41%)보다 대폭 줄어든 32%에 그쳤다. 이 비율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로이터연구소(Reuters Institute)도 스마트폰을 통한 디지털 뉴스 접근이 조사 대상국별로 각각 37%에서 46%까지 늘어났다는 리포트(Digital News Report 2015)를 내놨다. 전 세계적으로 뉴스는 스마트폰이나 모바일 기기로 보는 게 대세라는 의미다.
모바일 기기로 뉴스를 보는 세상이 됐음을 잘 알지만 신문에 얽힌 추억을 간직한 ‘신문 키드’로서 신문의 퇴장을 지켜보는 심정은 복잡하다. 앞으로 신문을 보며 꿈을 키우는 ‘신문 키드’는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멀지 않은 시기 아이들은 신문기자라는 직업이 있었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다.
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 온라인팀 차장 shjung@kmib.co.kr
[세상만사-정승훈] 더 이상 ‘신문키드’는 없다
입력 2016-04-21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