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총선 선거운동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울산 발언은 부적절했다. 그는 지난 11일 울산 지원 유세에서 “현대중공업 가족들이 구조조정 없이 일하도록 특별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총선 결과에 상관없이 대표직을 그만두겠다고 공언한 그가 ‘대표 자격’으로 약속한 것이다. 그는 총선 참패를 이유로 14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작심삼일(作心三日)도 아니고 삼일공약(三日空約)을 발표했다. 대권 잠룡이 내뱉을 말은 아니었다.
한국 조선업계는 가시밭길을 가고 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8조5000억원에 달했다. 대우조선해양은 5조5000억원,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각각 1조5000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었다. 올해 수주 실적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현대중공업이 1분기에 선박 3척(2억 달러)을 수주했을 뿐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수주 제로를 기록했다. 대우조선해양이 2척을 수주했지만 해외 자회사의 수주 물량을 국내로 가져오기로 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현대중공업 노조는 사측을 무리하게 압박하고 있다. 노조는 적자가 나더라도 성과급 250% 보장을 포함한 임·단협 요구안을 사측에 제시했다. 회사는 9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5조원에 육박하는 누적 적자를 냈다. 노사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해도 부족할 판이다. 사측은 노조의 생떼를 수용하면 안 된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노측의 처신은 그나마 낫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는 사측과 손잡고 선주들을 만나 선박 발주를 호소했다. 두 회사 노측은 조선업을 특별 고용위기 업종으로 지정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안쓰럽다. 일부에서는 2019년까지 조선업 불황이 계속될 것으로 우려한다. 고용 빙하기가 덮치기 전에 노사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란 업체들은 조선·정유·가스·건설 분야 등에서 발주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달 이란을 방문키로 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역대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이 함께 간다. 조선 빅3에 좋은 기회인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란과 선박 수주 계약을 맺으려면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란 선주는 자기자본을 5% 가량만 내고, 조선업체가 나머지를 해결하기를 요구한다. 돈줄이 마른 조선 빅3가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정부 조선업체 금융권 등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한국 정유업체가 이란 원유를 거저 들여와 조선업체와 정산하는 것을 포함해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
일본 조선업계는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조선업계는 정부의 막대한 자금 지원을 등에 업고 광폭 행보를 하고 있다. 세계 조선업의 절대 강자였던 스웨덴은 시나브로 신흥강자 한국에 밀리고 말았다. 한국 조선업계도 스웨덴처럼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비상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조선업이 활황일 때는 조선 3사의 운신 폭이 컸다. 3사가 소화할 만큼 발주량이 쏟아졌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영 다르다. 발주량이 대폭 줄어 수주 절벽에 직면했고, 출혈 경쟁도 피할 수 없다. 대우조선해양을 살리기 위해 금융권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부실기업을 연명시키는 데 혈세를 투입하면 안 된다. 조선 3사를 한두 개로 합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율적 합병을 유도하되 여의치 않으면 채권단이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두 야당도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늦추면 청산 비용은 급증하고 성장 동력은 급격히 식는다. 한국은 대마불사(大馬不死)를 고집하다 외환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그런 어리석음을 또 범할 텐가.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
[여의춘추-염성덕] 조선업계가 사는 길
입력 2016-04-21 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