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택의 문학과 영성] 베니스에서의 죽음, 동성애의 참혹한 결말

입력 2016-04-22 18:15
임춘택 교수
‘토니오 크뢰거’ ‘마의 산’ ‘부덴브로크 가(家)의 사람들’ ‘요셉과 그 형제들’의 지은이, 192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19세기 괴테를 이어 20세기 독일문학을 세계문학 정상의 자리로 이끈 작가, 미국 망명 기간 히틀러 나치 정권에 4년 넘게 ‘독일 청취자 여러분’ 코너 라디오 연설로 맞선 투쟁가. 그는 토마스 만(1875∼1955)이다.

그의 대표작 ‘토니오 크뢰거’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토마스 만은 주로 본인의 삶을 소설로 형상화하는 자전적 작가이다. 이러한 점에서 ‘베니스에서의 죽음(사진)’은 그가 젊은 시절 ‘한때’ 동성애와 깊이 관련되었음을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동성애의 특징과 실상 그리고 그 끝이 참혹한 파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작품 내용은 단순하다. 휴양 도시 베니스에서 한 중년남성(아센바흐)이 한 아름다운 소년(타치오)에게 첫눈에 반해 쫓아다니는 중에 모두가 쉬쉬하는 콜레라에 시민들이 떼죽음 당하고 결국 주인공 아센바흐도 죽는다는 내용이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아센바흐의 타치오 육체에 대한 찬미와 숭배로 이어진다.

“오후에 아센바흐는 바람이 잔잔하고 태양이 찌는 듯이 작열하는 가운데 베니스로 가는 배를 탔다. 폴란드인 남매들을(소년 타치오와 그의 누이들) 따라가려는 병적인 욕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아센바흐는 소년의 머리와 어깨에 손을 대고 싶어진다. …갑자기 그는 너무 오랫동안 소년의 뒤를 바짝 따라가고 있지 않은가 염려된다.” “아센바흐의 머리와 가슴은 도취되어 있었고, 그의 발걸음은 인간의 이성과 위엄을 짓밟는 것을 낙으로 삼는 어떤 악령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의 관심과 욕망은 상대 남자의 외모에 강하게 집중되어 있어서 남성 동성애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토마스 만은 강한 중독성을 지닌 아센바흐의 동성애가 윤리와 인륜에서 벗어나 정상이 아님을, 헤어나기 어려운 늪과 같은 것임을, 악령의 지시를 따르는 그릇된 육체적 욕구에 불과한 것임을 그려냈다.

토마스 만은 이 작품의 주제가 “어느 늙어가는 예술가의 소년애”라고 말함으로써 동성애를 다루고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가 20대 중반에 두 명의 남성 베르트람, 에렌베르크와 동성애 관계였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1899). 그는 ‘베니스에서의 죽음’(1912) 이후 ‘결혼에 관하여’(1925)라는 글에서 동성애를 ‘죽음’ ‘생식불능’ ‘무책임’ ‘가망성 없음’ ‘방탕’ ‘변덕’ 등의 개념들과 관련지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사회는 동성애의 실체를 정확히 인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상의 본질과 사태를 정확하고 통찰력 있게 다뤄야 할 영역이 문화예술 분야이다. 그러나 작품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토마스 만의 견해에 반하여, 현시대 동성애 관련 대다수 문학 드라마 영화 무용 작품들이 동성애를 예술적으로 미화하거나 인간 순리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동성애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바른 판단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픽션 장르의 이러한 문제 상황에서, 오히려 다큐 장르 이를테면 ‘유튜브’에서도 쉽게 감상할 수 있는 김광진 감독의 다큐 영화 ‘나는 더 이상 게이가 아닙니다’는 동성애와 동성애자 삶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에 해당한다.

하나님은 성경 레위기 18장에서 근친상간성범죄, 아동성범죄, 동성애, 수간 같은 가증한 일들을 행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만약 행하면 그 땅이 주민을 토해내 그곳에서 살 수 없다고 경고하신다. 하나님 심판의 도끼가 대한민국의 밑동을 찍어내기 전에 성적 타락을 합법화하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 또한 교회와 사회는 우리주변의 적지 않은 동성애자의 고통과 탄식에 귀 기울이고 이들이 동성애에서 탈출하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임춘택(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