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일주일 새 3명, 올 들어서만 원·하청 노동자 5명이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은 울산 현대중공업이 딱 그런 분위기다. 20일 오후 울산 동구 전하동 1번지 현대중공업 정문은 찌푸린 날씨만큼 을씨년스러웠다. 먹구름이 잔뜩 드리운 검은 하늘은 울산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듯했다. 평소 근로자로 북적였던 공장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언제나 굉음을 내던 기계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적막감이 들 정도였다. 안전사고가 잇따르자 회사가 극약처방으로 1972년 창립 이래 첫 자체 작업 중단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들은 정문 입구부터 외부 인사들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특히 취재진의 접근은 더욱 엄격하게 막았다. 회사 관계자는 “여러 언론사에서 취재요청이 들어오지만 회사 사정으로 당분간 사내출입을 제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만 했다.
회사는 이날 임직원 일동 명의로 ‘안타까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안전한 일터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냈다. “회사는 일련의 사고를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대책을 수립해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은 이날 전면 작업 중단과 함께 전사 안전 대토론회를 열었다. 전 임직원이 자신이 근무하는 작업장의 위험요인을 재점검해 위험제거 활동을 펼치고 점검 결과에 대한 발표와 토론, 안전점검표 작성 등을 통해 안전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은 작업 중단에 따른 하루 휴무로 인건비만 83억원 상당이 발생하고, 생산공정 지연 손실까지 포함하면 더 큰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현대중공업은 해양플랜트 부실로 2014년 3조2000여억원의 적자를 낸 뒤 지난해에도 1조5000여억원의 손실을 냈다.
생산직 김모(46)씨는 “요즘 경기가 너무 좋지 않아서 회사 특근도 없고 성과급도 거의 없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최근 안전사고가 잇따라 회사 분위기가 최악”이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업체 간 경쟁을 부추기고 폐업과 임금 삭감으로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안전은 확보될 수 없다”고 회사 측을 질타했다.
당국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관 1명을 21일부터 현대중공업에 상주하도록 했고, 부산고용노동청은 25일부터 2주 동안 안전보건공단 등과 함께 30여명의 안전보건 분야 전문인력을 투입해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이 창사 이래 최악의 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 인근 번화가 역시 심대한 타격을 받고 있다. 방어동 주민 장모(36)씨는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새벽 2시까지 사람도 많고 시끌벅적했는데 요즘은 밤 10시만 되면 한산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부동산 시장도 얼어붙고 있다. ‘꽃바위’로 불리는 방어동 일대에는 원룸, 빌라들이 많지만 요즘 집을 구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의 한결같은 한탄이다.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길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 정문에 큼지막하게 표어로 걸어놓은 현대중공업 창업자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어록이다. ‘죽음의 조선소’로 변한 현대중공업이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현재의 먹구름을 뚫고 말이다.
울산=조원일 기자 wcho@kmib.co.kr
창사 이래 첫 ‘하루 작업 중단’ 현장 가보니… 대규모 적자에 잇단 사망사고 기계 소리 멈춘 현대重
입력 2016-04-21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