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은 이들의 몸속에 스며 울리는 야상곡

입력 2016-04-21 17:48
‘花.飛.花.飛./ 내 눈동자에 마지막 담는 풍경이/ 흩날리는 꽃 속의 당신이길 원해서’(‘花飛. 그날이 오면’의 일부).

‘벚꽃 엔딩’이다. 꽃잎은 속절없이 졌다. 사라진 벚꽃의 추억과 함께 사랑도 떠나보낸, 짝 잃은 연인들을 위한 시다. 사랑시다. 버스커버스커의 장범준이 특유의 아날로그적 음성으로 연가를 읊었던 것처럼 김선우(46·사진)의 연시(戀詩)에는 확실히 ‘응팔’(응답하라 1998)의 정서가 있다.

SNS가 판치는 세상이라 이별통보조차 ‘까톡’(카카오톡 알림음)하고 날리면 그 뿐일 것 같은 시대다. 그런데 사랑이라서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쓰는 자이고 사랑하는 자이다.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이렇게 선언했던 그의 네 번째 시집 ‘녹턴’은 사랑의 불가능성이라는 전제로 출발한다. 그리하여 시의 전편에는 애도의 정서가 흐른다.

시집에서 사랑의 끝은 한탄이나 좌절이 아니라 성숙이며 재생이다. 이는 사랑에 대한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한밤 중 오줌을 누면서 불현듯 느끼는 통찰이 흥미롭다. ‘가두는 자가 아니라/ 흐르고 빠져나가는/ 저 역할이 마음에 든다’(‘한 방울’의 일부)는 구절은 사랑의 속성은 변하는 것이라 선언하는 듯하다.

한때 너와 나 사이에 사랑이 존재했던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사랑은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반쪽 빛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반쪽 어둠을 찾아 영접하는’ ‘바라보며 나누어 먹으며 가끔 입가를 닦아주는’(‘소울메이트’의 일부).

시집의 제목 ‘녹턴’은 야상곡을 의미한다. 고요한 밤, 조용히 흐르며 감정을 뒤흔드는 녹턴처럼 끓어오르는 감정을 자제하지만 사랑의 고통은 군데군데 돌출되며 씹힌다.

‘세월이란 푸른곰팡이 슨 고통의 마디마저/ 희고 검은 건반이 되는 동안, 이라 적어두는게 좋으리./ 누르면 어떤 장단으로 음악이 되는/ 절. 룩. 절. 룩’

그렇다. 떠나간 사랑 탓에 텅 비게 되고 그것이 거꾸로 성숙의 역설로 이어지지만, 상처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봄은 가고 사랑도 가서 아픈 이들에게 이 시는 어루만져주는 약손이 될 것 같다. 사랑을 잃은 이들의 몸속으로 스며 흐르며 울리는 한밤의 진혼가 같은 시들이다. 또한 사랑의 시작은 사랑에 대한 애도를 예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시들이다.

시인은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인이면서 에세이스트, 소설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현대문학상과 천상병시인상을 받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