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응원문화 속으로… 그곳에 가면 ‘화끈’, 이곳엔 언제나 ‘웃음’

입력 2016-04-22 20:05
울볼이 담장을 넘어 관중석으로 떨어진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공을 줍기 위해 달려간다. 보통은 아저씨가 승리한다. 아저씨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공을 번쩍 들어 자랑한다. 그때 관중은 일제히 응원봉과 손가락으로 아저씨를 가리킨다. 그리고 한목소리로 이렇게 외친다.

“아 주라!”

경상도 사투리로 주변의 아이에게 공을 양보하라는 뜻이다. 인심 좋은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파울볼을 잡은 관중에게 외치는 구호다. 경기장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군중심리로 빼앗는 것 아니냐는 논란은 있지만 이제는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풍경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개성 강한 응원문화는 프로야구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응원문화는 올해로 34년째를 맞은 프로야구의 역사를 따라왔다. 10개팀의 응원문화는 도시의 특징, 모기업의 정서, 구단의 역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가장 열정적인 응원문화를 만든 팀은 롯데, KIA 타이거즈, LG 트윈스다. 이른바 ‘엘롯기(LG·롯데·KIA) 동맹’으로 불리는 팀들이다. 세 팀 팬은 한때 프로야구계를 주름잡았던 왕년의 자부심과 이젠 가을야구조차 벅찬 중하위권의 설움이 뒤엉켜 독특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롯데의 응원문화는 단연 압권이다. 부산 사직구장 관중은 응원봉 대신 신문지를 찢어 흔들고, 머리에 주황색 봉투를 뒤집어쓴다. 파울이나 홈런 타구를 잡은 성인 관중에겐 “아 주라”를 외친다. 야유할 땐 “마”를 연호한다. 경기가 끝나면 결과와 상관없이 ‘부산갈매기’를 합창한다. 이런 각각의 풍경이 모여 사직구장 관중석을 수놓는다.

KIA도 롯데에 뒤지지 않는다. 호남권 유일의 팀답게 화끈하고,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10회)팀의 자부심이 강하다. 상대 팀 견제구나 파울 커팅 때마다 광주 KIA 챔피언스필드 관중석에서 묵직하게 들려오는 “아야! 아야! 날 새것다(이봐! 이봐! 날 새겠다)”라는 야유가 날아간다.

LG는 롯데, KIA보다 짧은 구단의 역사에서 강렬한 응원문화를 형성했다. 대중성보다는 마니아층으로 이룬 문화다. 응원구호는 ‘무적 LG’다. 두 차례 우승했던 90년대 초반부터 외쳤던 구호다. 한때 모기업의 광고 테마곡이었던 “사랑해요 LG”를 서울 잠실구장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잠실구장의 또 다른 주인 두산 베어스 관중석엔 유독 미녀들이 많다. 야구팬들이 중계방송 화면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녀’로 이름을 붙인 미녀의 절반가량은 두산 팬이다. “유니폼 색상이 예뻐서.” “몸이 좋고 잘생긴 선수가 많아서.” “구단의 성적이 꾸준하게 좋아서.” 미녀들이 두산으로 몰린 이유는 제각각이다.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할 수 있는 인구 1000만명의 서울에서 꾸준하게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결과로 보인다.

대구의 삼성 라이온즈 팬들에겐 ‘왕가’의 자부심이 있다. 비록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왕좌를 내줬지만 정규리그에선 디펜딩 챔피언이다. 지난해까지 5년 연속으로 정규리그를 제패했고, 그 전년까지 4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정복했다. 정상급 기량을 가진 선수들을 꾸준히 영입하는 모기업의 이런 전략은 팬들의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었다. 롯데, KIA, 두산과 마찬가지로 프로야구 원년 멤버지만 장내 난동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전의 한화 이글스 팬들은 인내의 상징이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충청도 정서는 응원문화 속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팬들은 한화가 대패해도 언제나 웃으며 “나는 행복합니다”를 연호한다. 지난해부터 만년 꼴찌의 오명을 떨쳐내고 성적을 끌어올려 극성팬도 생겼지만, 빙그레 시절부터 응원했던 올드 팬들은 여전히 느긋하고 점잖다.

인천 팬들의 응원문화에는 삼미 슈퍼스타즈와 태평양 돌핀스 시절의 설움, ‘삼성 왕조’ 이전까지 프로야구 판을 흔들었던 SK 와이번스의 자부심이 서려 있다.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돔구장 시대를 개막한 서울 서부의 넥센 히어로즈, 올해 유력한 우승 후보로 떠오른 경남 마산의 NC 다이노스, 올해 2년 차를 맞은 경기도 수원의 ‘막내’ kt 위즈는 각각의 응원문화를 창조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