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 도시 뉴욕을 ‘안디옥’으로 만들다

입력 2016-04-21 19:13
미국 뉴욕의 리디머장로교회 팀 켈러 목사는 최근 펴낸 ‘팀 켈러의 센터처치’에서 복음의 본질과 문화에 대한 오랜 고민이 지금의 교회 사역을 일구었다고 밝혔다. 두란노 제공
미국 뉴욕은 전 세계 인종과 언어, 문화와 종교의 전시장이다. 9·11 테러를 겪었지만 여전히 세계 경제와 문화, 금융의 중심지다. 다양성과 자유는 이 거대도시의 상징이다. 그 이면엔 무신론과 동성애, 뉴에이지라는 세속코드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뉴욕은 보수적 기독교인들에게 ‘소돔과 고모라’로, 시날 평지의 ‘바벨탑’으로 인식된다. 이곳의 강력한 다원주의와 세속주의는 교회와 목회자들의 무덤이라는 오명까지 안겨줬다.

그런데 이곳 뉴욕에 8000명의 성도가 예배를 드리고, 전 세계 400개 도시의 교회개척을 돕는 교회가 존재한다. 1989년 팀 켈러 목사가 30명의 성도와 함께 세운 리디머장로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다. 교회 성도들은 단순한 ‘출석 성도’가 아니다. 그들은 진정한 복음을 접하고 마음에 변화를 받았다.

이 교회에선 뉴욕 한복판의 대형교회라면 있을 법한 창고 예배나, 격식 없는 옷, 현란한 비디오영상, 인디음악을 찾을 수 없다. 대신 세속적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 수천명이 모인다. 이 교회 성도들에게 뉴욕은 소돔과 고모라가 아니라 ‘안디옥(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은 곳)’에 가깝다. 어떻게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단 중 하나인 미국장로교(PCA) 소속 교회가 뉴욕에 복음의 깃발을 올릴 수 있었을까.

켈러 목사가 30년 목회를 집대성해 최근 펴낸 책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한 명의 목회자가 평생 사역을 정리했다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199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대형교회 스토리도 아니다.

존 오트버그 목사는 ‘깊이 있는 신학적 성찰과 분별 있는 문화적 해석의 결과로 형성된 교회 사역에 대한 요청서’로 이 책을 정의했다.

책 어디에도 ‘리디머교회를 따라해 보라’거나 ‘성장 보장’ 목회 노하우를 소개한 대목은 없다. 오히려 훨씬 근본적이며 중요한 얘기로 가득하다. 켈러 목사 자신도 “그동안 많은 책들이 특정 환경에서 특정 시기에 사용된 기법과 모델을, 명시적이거나 암시적으로 거의 절대화해서 가르쳤다”며 “분명한 것은 그 기법들 중에는 많은 것들이 뉴욕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털어놨다.

리디머교회가 성장하자 ‘성공비결’을 찾으려는 방문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새로운 모델을 발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켈러 목사는 독자들에게 “리디머교회에서 어떤 방법의 사역들을 사용했느냐가 아니라 그 방법들에 도달하기 위해 어떻게 했는가를 붙잡으라”고 권했다.

많은 사역자들이 교리적 확신이나 문화적 맥락을 따지지 않고 일단 유명 프로그램과 방법론을 도입한다. 그러나 이를 모든 교회에 그대로 적용하면 효과가 없다. 켈러 목사는 그 이유를 “해당 프로그램들이 복음 이해 및 특정한 지역 문화에 대한 성찰로부터 우러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교회들이 교리와 실천의 중간 영역을 놓치고 있다. 이 중간 공간은 신학과 문화를 깊이 성찰하는 공간”이라며 “여기서 교회의 독특한 사역의 모습이 결정된다”고 했다.

켈러 목사는 중간 지대를 ‘미들웨어’로 불렀다. 교리적 기초가 ‘하드웨어’, 사역 프로그램이 ‘소프트웨어’라면 그 중간인 미들웨어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들웨어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에서 기능을 맡는 층이다. 목회에 적용하면 교리적 믿음과 사역 방법 사이에는 복음을 특정 문화 속으로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켈러 목사는 미들웨어를 ‘신학적 비전’으로 불렀다. 이 책은 신학적 비전에 대한 상세한 소개를 800쪽에 걸쳐 풀었다. 복음과 도시, 운동이라는 세 축에서 교회 사역의 DNA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켈러 목사가 뉴욕에서 목회의 열매를 거둔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복음의 본질과 적용에 대해 오랫동안 숙고했고, 뉴욕의 문화에 대해 오랜 기간 공부했다. 그는 “리디머교회는 뉴욕에 사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감수성, 도시 중심부의 정서적·지성적 지형에 대해 숙고했다”면서 “이 숙고와 의사결정 과정이 (최종)결과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책을 번역한 오종향(서울 뉴시티교회) 목사는 20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신학교에서 배우고 싶었으나 결국 배우지 못했던 ‘신학과 목회’를 위한 청사진”이라며 “켈러 목사는 한국교회 앞에 닥친 다원주의·세속주의와의 전투를 효과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지형도’를 선물했다”고 말했다.

책은 켈러 목사의 방대한 독서와 고민, 경험의 흔적이 매 페이지마다 묻어나온다.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실용적이다. 앞으로 이만한 목회 관련 서적이 다시 등장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