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압수수색 직전 증거인멸 정황

입력 2016-04-20 19:21 수정 2016-04-20 21:32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측이 가습기 살균제 성분의 인체 유해 가능성을 적시한 자료를 일괄 폐기·삭제한 정황이 나왔다. 가습기 살균제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글을 옥시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옥시의 전 민원담당 직원 2명도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다.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20일 “옥시의 전 민원담당 직원 2명을 내일 소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을 대상으로 옥시가 자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고객의 글을 대거 삭제한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옥시에 독성물질로 지목된 PHMG(폴리헥사메틸렌 구아디닌)를 제공한 SK케미칼이나, 옥시 제품을 제조한 한빛화학 관계자들도 조만간 소환된다.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은 지난달 9일 SK케미칼의 전·현직 임원 1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핵심은 SK케미칼 측이 PHMG의 흡입 위험성을 사전에 알고도 공급했는지 여부다. 검찰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제품 원료를 생산해서 판매했을 뿐, 그 원료를 누가 어디에 가져다 썼는지 알지 못했다’는 게 SK케미칼의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원료를 옥시에 직접 판매한 것이 아니라 도매상 등을 통해 공급해 최종 사용처를 알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10년 넘게 원료를 공급했는데 사용처를 몰랐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사 제품이 활용되는 곳과 수요를 정확히 알아야 생산량 계획 등을 세울 수 있다”면서 “대기업이 정확한 사용처도 모른 채 오랜 기간 물건을 팔았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고 했다.

SK케미칼이 PHMG 위험성을 제조업체에 충분히 알렸는지도 논란거리다. SK케미칼 측은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에 따라 ‘흡입 경고’ 문구가 담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첨부해 원료를 제공했다고 한다. MSDS는 화학물질의 안전한 사용·관리를 위해 주요 성분과 주의사항 등을 담은 자료다.

이와 관련, 검찰은 옥시 측이 2001년부터 보건 당국이 제품 수거 및 판매 중단 명령을 내린 2011년 말까지 10년치의 MSDS를 검찰 수사 직전에 무더기 폐기한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옥시 측 연구원들을 불러 MSDS 폐기 경위와 고의성 여부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정부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송기호 변호사는 “PHMG는 1996년 12월 제조업체인 ㈜유공이 제조신고서에 유해성을 명백히 표시했는데도 환경부가 용도 제한을 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