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훈(32·NC 다이노스·사진)은 원래 홈런 타자였다. 2001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 결승전에서 연타석 홈런을 쳐 우승을 이끌고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한 휘문고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차세대 강타자로 주목을 받았다. 2년 뒤 졸업과 동시에 현대 유니콘스의 신인 드래프트 2차 1순위 지명을 받고 프로로 입문했다. 탄탄대로의 야구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고교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로 이룬 성과는 프로의 벽 앞에서 초라할 뿐이었다. 타율 2할대 진입조차 쉽지 않았다. 타격 부진에 당황해 수비 실수를 연발했다. 그렇게 주전 유격수를 빼앗기고 2군으로 내려갔다.
현대의 해체로 출범한 지금의 넥센 히어로즈에서도 그가 비집고 들어갈 선발 타순은 없었다. 가끔 얻은 출전 기회에서 한두 차례 홈런을 때렸지만 황금사자기 MVP 지석훈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느새 ‘만년 백업’의 꼬리표가 그에게 붙어 있었다.
2013년 넥센에서 사실상 방출돼 유니폼을 갈아입은 NC 다이노스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신생팀이라 선수가 부족했던 NC는 지석훈에게 더 많은 출전 기회를 부여했다. 타석이 늘어날수록 타율과 타점도 상승했다. 김경문(58) 감독은 그런 지석훈을 넘겨보지 않았다. 지석훈은 지난해 모창민(31)의 부진을 틈타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NC가 삼성의 3루수였던 박석민(31)을 올해 영입하면서 지석훈은 주전을 빼앗겼다. 다시 붙은 백업의 꼬리표.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출전 기회를 위해 묵묵하게 훈련했다.
김 감독은 지난 19일 LG 트윈스와의 서울 잠실 원정경기를 앞두고 지석훈을 8번 타자 겸 2루수로 불렀다. 부진한 박민우(23)를 2군으로 보내면서 내린 결정이지만 무엇보다 지석훈을 믿었다. 지석훈은 김 감독의 신뢰에 홈런으로 응답했다. 지난 17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마산 홈경기에 이어 2경기 연속 홈런을 때렸다. 3대 6으로 패배한 20일 LG전에서도 3타수 1안타 1볼넷으로 두 차례 출루했다.
지석훈은 박민우의 복귀와 동시에 백업으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팀을 위해 백업도 감당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지석훈은 “NC가 아니었으면 야구를 다시 시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주전이든 백업이든 충실하게 수행할 준비가 됐다”며 “박민우가 복귀해도 뒤에서 잘 받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팀의 우승”이라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만년 백업?… NC 지석훈, 고교땐 홈런 타자였다
입력 2016-04-20 21:17 수정 2016-04-21 0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