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가득한 조선의 봄… 정겨운 풍경에 빠져볼까

입력 2016-04-20 20:19 수정 2016-04-21 19:24
‘간송문화전 6부’에서는 봄을 즐기는 옛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다. 윤용 ‘협롱채춘’(바구니 끼고 봄을 캐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김홍도 ‘마상청앵도’(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봄에 홀린 듯 일손을 놓고 먼 산 아지랑이를 바라보는 아낙, 종을 앞세워 말을 타고 가다 물오른 버들가지 꾀꼬리 소리에 취해 걸음을 멈춘 선비, 춘흥에 겨워 들놀이 중인 기생과 선비, 지게를 내려놓고 쉬고 있는 보부상….

봄이 난만하다. 이 봄이 설레기는 조선시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양반과 평민, 장사꾼과 대장장이 등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0일 개막한 ‘간송문화전 6부: 풍속인물화-일상, 꿈 그리고 풍류’전이다.

이번 전시는 일상, 꿈, 풍류 3가지로 주제를 나눴다.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일하고 독서하고 여가를 즐기고, 동시에 ‘구구팔팔(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을 꿈꿨던 옛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봄의 대표작은 조선 후기 화원화가 김홍도의 ‘마상청앵도’이다. 늦봄, 어느 화창한 날에 젊은 선비가 봄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문득 말에 올라 봄을 찾아 나섰다. 길가 버드나무 위에서 꾀꼬리 한 쌍이 화답하며 노니는 모습에 넋을 빼앗긴 채 바라보는 장면을 스냅사진처럼 포착했다. 그의 후배인 김득신의 ‘야묘도추’는 살구나무에 꽃망울 움트는 봄날 도둑고양이가 병아리를 잽싸게 채어 달아나는 순간의 포복절도할 주변 상황을 그렸다. 풍속화가 보여줬던 해학미의 백미다.

풍속화는 이렇듯 화원화가들이 기교적으로 발전시켰지만, 태동은 선비화가들이 주도했다. 절구질하는 아낙, 돌 깨는 석공, 나물 캐는 처녀 등을 그린 선비화가 조영석, 윤두서, 윤용 등이 대표적이다.

전시에는 조선 초기 화가 안견의 제자 석경(1440∼)에서부터 근대기 화가 고희동(1886∼1965)에 이르는 조선 500년 동안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명작들이 대거 모였다. 신윤복이 그린 빨래터는 지나가는 나그네가 훔쳐보는 여성들만의 공간이었다. 시대가 바뀌어 고희동의 작품 속 빨래터에는 지게를 벗어 던지고 바지를 걷어붙인 채 아내의 빨래 일을 돕는 남편이 나온다.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표현법의 변천도 볼 수 있다. 조선 초기 인물화에는 중국옷을 입은 고사 속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18세기 진경산수와 함께 풍속화가 만개하면서 화폭에는 조선옷을 입은 조선 사람의 얼굴이 그려졌다. 19세기의 ‘완당(김정희의 호) 바람’은 거세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김정희의 제자 유숙이 그린 ‘조산루상월’(조산루에서 달을 감상)에선 달빛 아래 시 모임을 갖는 선비들이 모두 중국옷을 입고 있다.

장수에 대한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복숭아 3개를 훔쳐 3천갑자(6만년)를 살 수 있게 된 동방삭, 거북이를 끌고 가는 수노인 그림 등 원초적 욕망을 담은 이런 그림들은 당시에 크게 사랑받은 장르였다. 조선 선비들의 풍류는 신윤복의 그림을 능가하는 이가 없을 것 같다. 그의 에로틱한 풍속화와 함께 대표작 미인도가 나왔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더 많은 대중과 만나기 위해 2년 전부터 DDP에서 하고 있는 소장품 외부 전시의 마지막이다. 8월 28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