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연 동네책방 ‘詩心의 사랑방’ 됐네!

입력 2016-04-21 04:09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골목에 자리한 시 중심 서점 ‘청색종이’. 이 책방의 주인인 시인 김태형씨가 ‘천 권의 시집’ 서가를 소개하고 있는 모습. 책방 내부(위부터).청색종이 제공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다는 이 시대에 시향이 진동하는 책방이 있다.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로 8-6’을 주소로 쓰는 ‘청색종이’ 서점이 그곳이다. 문래역 7번 출구에서 도보로 3분 거리, 요즘엔 문래예술촌으로 더 유명한 철공소 골목 안에 자리 잡은 동네책방이다.

지난 1월 문을 연 청색종이는 시인이 운영하는 시 중심 서점이다. 1992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해 ‘로큰롤 헤븐’을 시작으로 4권의 시집과 최근의 ‘하루 맑음’까지 4권의 산문집을 낸 등단 24년차 시인 김태형(44)씨가 이 서점의 주인이다.

김씨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책들을 서점에 내다놓고 판다. 시인이 소장하던 책이다 보니 이 서점에서 파는 책 상당수가 시집이다. 시집 전문 중고서점인 셈이다. ‘천 권의 시집’은 이 서점을 대표하는 서가다. 서가를 훑어보면 허술한 시집이 하나도 없다. 김씨는 “이사를 여러 차례 다녔고 책도 꽤 많이 정리했는데, 결국 버리지 못한 책들이 여기 모여 있다”면서 “아무거나 뽑아도 문학사에 남을 시집들”이라고 컬렉션을 자랑했다.

김씨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집을 사서 읽었다고 한다. 용돈을 받으면 중고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시집을 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1950년대 출간된 초판본이라든지 절판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시집처럼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책도 꽤 많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희귀본을 찾으러 이 서점을 찾아오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실비아 플라스 시집 ‘거상’(1990년 출간), 이용악 시집 ‘낡은 집’(1991년 출간) 등이 그런 이들에게 발견돼 팔려나갔다.

책방 문을 연 지 두 달. 김씨는 “임대료만 나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책방을 시작했다”면서 “큰 수입은 없어도 유지는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하루 팔리는 시집은 평균 5권 정도. 시집 1000여권에 다른 책 1500여권을 갖추고 있지만 시집이 더 많이 팔린다고 한다. 김씨는 매일 오후 1시부터 9시까지 서점 문을 열어둔다. 서점으론 생활비가 안 나와서 강연이나 저술, 방송 활동 등을 병행하고 있다.

책방에는 신작 시집들의 저자 사인본도 만날 수 있다. 김씨가 시인들에게 부탁해 확보한 것들이다. 시인 사인본은 꽤 인기가 많아서 대기자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선후배 시인들이 서점에 찾아오다 보니 문인들이 모이는 사랑방 역할도 하고 있다. 저녁에는 문학 강좌가 열린다. 문학평론가 이성엽이 이끄는 독서토론모임 ‘인문독회’, 김태형 시인의 시창작 교실 ‘수요시회’, 전형관 시인의 산문 강좌 ‘솔직한 글쓰기’ 등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김 시인은 “좋은 시를 알리는 기쁨이 크다”면서 “시집이 꾸준히 소비되도록 하는 게 의미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제가 아꼈던 책을 누군가 알아본다는 것, 제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문학과 인문학에 여전히 감탄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행복하다”고도 했다.

김씨는 서점에서 시도 쓴다. “손님들, 책들, 골목, 이웃들을 소재로 삼아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한 시를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새로 쓴 시를 A4 용지에 인쇄한 뒤 서점 앞에 내놓기도 한다.

‘한 사람이 온다/ 골목 앞집 오동나무의 느짓한 가지 사이/ 아직 잎사귀를 틔우지 않은 얼굴로 단 한사람이 내게 오는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단정한 시 ‘손님’이 서점 앞에 비치돼 있다. 김씨는 “매주 시를 하나 새로 써서 수요일에 서점 앞에 내놓을 계획”이라며 “이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시를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