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탈 때마다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속성을 목도하게 된다. 비행기 좌석은 승객이 지불하는 액수에 따라 퍼스트, 비즈니스, 이코노미클래스로 나뉜다. 표 값은 일등석의 경우 대략 이코노미석의 네 배, 비즈니스석은 두 배 정도다. 일등석과 비즈니스석 승객들은 넓은 공간과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쾌적한 비행을 즐기지만 이코노미석 승객들은 영락없이 케이지에 갇힌 가축 신세다. 뒷자리 승객과 싸울 각오가 돼 있지 않으면 좌석 등받이를 뒤로 젖힐 생각은 접는 게 좋다.
그래도 단거리 비행은 참을 만하다. 하지만 동남아만 가려 해도 두 다리에 전해지는 고통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 너덧 시간의 비행도 이 정돈데 미국이나 유럽으로의 장거리 비행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옴짝달싹 못하는 이코노미석에 앉아 장시간 비행을 하다 보면 다리가 저리고, 붓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심하면 혈액이 응고되는 심정맥혈전 증상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이다.
1970년대까지는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이 보고되지 않았다. 항공사들이 80년대 들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좌석 앞뒤 간격을 줄이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70년대 평균 88.9㎝였던 좌석 간격이 78.7㎝로 10㎝ 넘게 좁아진 탓이다. 그런데도 좌석 간격을 더 줄인 이코노미마이너스석 설치를 추진 중인 외국 항공사도 있다고 한다.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이 기내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비좁은 차 안도 마찬가지다.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한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50대 이재민 여성이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으로 숨졌다. 이재민 수용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다 변을 당했다. 이 여성처럼 차 안에서 지내다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 판정을 받은 이재민이 21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2명은 중태라는 소식이다. 천재지변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텐트만 제때 지급됐어도 막을 수 있었던 인재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한마당-이흥우]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
입력 2016-04-20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