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인천 남동구 은봉로 하나비전센터(원장 김명옥 사모) 교육실. 손끝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작은 나사를 목재판에 끼우는 작업훈련이 한창이다. 비어있던 구멍이 하나씩 채워질 때마다 훈련생들의 입가에 미소가 배어나왔다. 옆 테이블에선 좀 더 난도가 높은 정량밸브 부품 조립이 이뤄지고 있었다.
임형빈 하나비전센터 실장은 “비장애인에겐 쉬워 보이는 단순조립도 지적장애인들에겐 ‘하늘의 별따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며 “1∼2분 집중하는 것부터 지속적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는 ‘그림의 떡’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홈패션 작업실습장’이란 팻말이 적힌 교육실에선 아기 속싸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재봉틀 앞에서 작업하던 안지환(26·발달장애 1급)씨는 “출산한 성도들에게 교회가 선물로 주는 것인데 내가 만든 것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된다는 게 뿌듯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안씨의 스승이자 한복 디자이너 출신인 김향희(44·여) 교사도 지체장애인이다. 이 센터를 운영하는 하나비전교회(김종복 목사) 성도인 그는 “교회에 올 때마다 더불어 사는 예수공동체 안에 소속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교회는 1995년 10월, 8명의 장애아동과 10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여 ‘사랑부’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드린 후 특수아동 선교원 설립, 장애·비장애 아동 통합유치원 과정 및 중·고등부 자립훈련 과정 설치, 청년·성인 장애인 통합 작업장 개설 등 장애인 선교를 위한 사역을 확대해 왔다.
하나비전센터는 하나비전교회가 장애인들의 자활과 자립, 선교 사역을 통합해 2006년 설립한 뒤 2009년 새 예배당 건축과 함께 교회 안에 세운 교육훈련센터다. 미취학 아동과 초·중·고생의 경우 방과 후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 청년들은 직업훈련을 받는다. 현재 43명의 직업훈련생 중 33명이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훈련받는 청년들이다.
훈련생들은 4년간 직업전문교육을 받는다. 1∼2학년 때 공예 도예 홈패션 기기조립 제과·제빵 등 10여 가지 교육을 받은 뒤 3∼4학년 때는 재능을 보이는 2∼3가지 분야에 집중 교육을 받는다. 이때 직업재활사의 개인적성 분석결과를 참고한다. 이후 3년간의 실습과정, 2년간의 인턴과정까지 수료하면 본인 의사에 따라 센터에 정직원으로 채용되기도 한다. 현재 두 명의 정직원이 훈련 보조교사와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강사들은 직업재활, 작업치료 등을 전공한 전문가들이다. 김명옥 원장은 “훈련 받은 학생들이 직업인으로서 생산하는 제품들이 ‘사줘야 하는 제품’이 아니라 ‘사고 싶은 제품’이 되려면 교육 때부터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지하 2층, 지상 11층으로 건축된 하나비전교회는 크게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예배를 위한 공간들이 자리 잡은 3∼5층이 워십센터 구역, 장애인 자활·자립을 위한 하나비전센터 교육 공간으로 채워진 7∼11층이 비전센터 구역, 카페와 제과·제빵실, 도예실, 양초공예실, 세차장 등 훈련된 장애인들이 사회인으로서의 꿈을 키워가는 드림센터 구역이 지하2층∼지상2층을 차지한다.
고소한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지하 제과·제빵실에선 인턴 2년차 박용준(29·발달장애 3급)씨가 버터 쿠키를 만들고 있었다. “행복하게! 기쁘게! 즐겁게!”를 입에 달고 사는 박씨의 꿈은 ‘최고의 파티셰’다. 그가 만들 수 있는 쿠키와 빵은 이미 서른 가지가 넘는다. 기자의 입에 갓 구운 상모과자를 넣어주며 “민경이(여자 친구)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도 전했다. 그가 만든 쿠키와 빵이 판매되는 곳은 교회 2층의 스톤 카페다. 이곳 안방마님 김지연(34·여·지적장애 3급)씨는 하나비전센터의 1호 정직원이다. 김씨는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들도 자주 오는데 ‘커피 맛 좋다’고 칭찬해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며 웃었다.
교회는 성도 수 증가로 예배당 확장이 필요하던 2003년, 교회 건축을 미룬 채 장애인 사역을 위한 ‘엘림하우스’ 건축에 나서기도 했다. 충남 서산 운산면에 대지 9만9173㎡(3만평)를 마련하고 5620㎡(1700평) 규모로 지은 이곳은 장애인 성도와 가족들의 쉼터인 동시에 훈련생들의 서비스 실습 교육장이다. 김종복 목사는 “장애인 사역은 물질적으로 계산하기 시작하면 절대 지속될 수 없다”며 “이 같은 인식을 목회자뿐 아니라 성도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하나비전교회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복 목사 “현 예배당 건축 때 직접 휠체어 타고 장애인 불편함 없는지 점검”
연수제일감리교회(김종복 목사·현 하나비전교회)의 새 예배당 건축이 한창이던 1992년 9월. 1650㎡(총건평 500평)의 예배당 설계도면 그 어디에도 엘리베이터를 위한 공간은 없었다. 하지만 한 뇌성마비 장애인 성도의 등록과 함께 많은 것이 바뀌었다. 김종복 목사는 성도들과 고민한 끝에 건축 도면을 재설계했다. 건축비 예산을 뚝 떼어 장애인 성도들의 편의를 위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12일 만난 김 목사는 “설계도면상 변한 것은 엘리베이터 하나였지만 실제로는 교회의 모든 것이 변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의 말대로 1992년 이후 교회는 사역의 중심을 장애인 선교에 두고 전진해왔다. 김명옥 사모는 1995년 ‘사랑부’가 창설될 때부터 장애인 복지와 교육, 직업훈련을 총지휘 해왔다. 22년 동안 이어온 장애인 선교의 집약체가 하나비전센터다.
2009년 인천 연수구에서 현 위치인 남동구로 교회를 옮길 때는 김 목사가 직접 휠체어를 타고 장애인 성도들에게 불편함은 없는지 건축현장을 점검했다. 그래서인지 교회 입구에서부터 예배당 화장실 교육실 등으로 이어지는 모든 공간에 문턱이 없었다. 바뀐 교회 이름도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서 모두 ‘하나’라는 뜻을 담고 있다. 현재 하나비전교회의 성도 수는 4000여명. 그 중 360여명이 장애인 성도다. 성도 10명 중 약 1명이 장애인인 셈이다. 장애인 자활·자립을 돕는 하나비전센터 운영을 위해서만 연간 5억원을 사용한다.
지난 1월부터는 예배당에 장의자 하나를 빼고 그 자리에 휠체어 4개를 갖다 놨다. 장애인 성도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김 목사는 “우리 모두는 예비 장애인”이라며 “비장애인 성도들이 장애인 성도들의 불편함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돌아가면서 휠체어에 앉아 예배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사모는 “배려는 있지만 차별은 없는 것이 하나비전 공동체의 특징”이라며 “장애인을 구제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동등한 예배자로서 함께 헌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인천=글 최기영 기자, 사진 전호광 인턴기자
[한국의 공교회-인천 하나비전교회] 교회 건물 13개층 중 9개층이 장애인 자립·자활 교육 공간
입력 2016-04-20 21:11 수정 2016-04-20 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