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광역의회, 정책보좌관制 충돌

입력 2016-04-19 21:36
서울시의 올해 세출예산은 39조원이다. 시의원 정수가 106명이므로 1인당 약 3679억원의 예산을 심의한다. 그런데도 시의원에게 할당된 보좌직원은 한 명도 없다. 현행 지방자치법상 유급 보좌관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1인당 1조2866억원의 예산을 심의하는 국회의원이 9명의 유급 보좌직원을 두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시의원들로서는 불만일 수 있다.

이런 현실적 제약 때문에 시간선택제임기제 공무원을 입법보조 인력으로 활용하는 시·도의회가 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4일 시의회 상임위원회 업무를 지원하는 입법조사요원(8급 상당) 40명을 추가 선발하는 내용의 공고를 냈다. 주당 35시간 근무하는 시간선택제 공무원이다.

광주시는 지난 1일 시간선택제 공무원 13명을 채용해 시의회 상임위원회와 운영위원회에 배치했다. 대구시도 2004년부터 시의원 보조 업무를 맡는 임기제 공무원을 채용해 현재 10명이 근무 중이다.

이런 움직임을 두고 시·도의회가 시간선택제 공무원 채용이란 편법을 통해 사실상 유급 보좌관제도를 운영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자치부는 19일 서울시의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 채용 공고와 관련, “법령에 근거하지 않고 예산집행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 편법채용”이라며 21일까지 자진 취소하도록 서면 시정명령했다.

하지만 서울시의회는 “입법보조요원은 특정 의원의 개인 활동을 지원하는 보좌관이 아니라 의회 상임위원회에 소속돼 상임위 업무를 전반적으로 지원할 인력”이라며 “날로 복잡·다양해지는 사무를 감당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시·도의원들의 정책역량 강화와 시·도 행정부 견제·감시를 위해서는 의정활동 보조 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임승빈 명지대 교수는 “국회의원 보좌관이 9명인데 40조원에 육박하는 서울시 예산을 심의하는 의원들에게 정책보좌관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뉴욕, LA, 도쿄, 타이베이 등 외국 주요 대도시 의회는 의원 1인당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10명까지 보좌 인력을 두고 있다.

이번에 행자부와 서울시의회간 충돌이 빚어진 것은 시·도의원의 정책보좌관 신설을 골자로 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지난해 안전행정위원회를 통과했으나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박래학 서울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전국 시·도의회 의장단은 국회에 여러차례 지방자치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인 유정복 인천시장도 2013년 안전행정부장관 시절 유급보좌관제 도입 방침을 밝혔다.

시·도의원들에게 개인 보좌관을 둘 경우 친·인척 고용 등 정실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투명한 채용 및 평가시스템을 도입하면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회는 시간선택제임기제 공무원 채용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2차 시험(면접시험) 평가위원 전원(5명)을 외부인사로 구성했다.

김찬동 충남대 교수는 “정책보좌관의 직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그에 상응한 평가체제를 마련하면 정실인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