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끝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유례없는 독자 감소, 흔들리는 정론의 가치 등 언론이 맞은 수많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성역 없는 보도와 비판은 지난해에도 빛을 발했다.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언론대학원 퓰리처상 선정위원회는 컬럼비아대 퓰리처홀에서 18일 (현지시간) 수상작을 발표했다. 1917년 시작된 이래 올해로 100회째다.
최고상인 공공보도 부문은 AP통신의 ‘노예들에게서 온 해산물(Seafood from Slaves)’에 돌아갔다. AP로서는 퓰리처상 공공보도 부문 첫 수상이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해산물이 동남아시아 군도에 붙들린 ‘노예 어부’에 의해 어떻게 생산되는지, 또 22년간 갇혀 강제노동을 한 남성의 사연을 지난해 수개월 동안 파헤쳤다.
보도 뒤 실상이 알려지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형사재판을 열어 관련자들을 처벌했다. 덕분에 2000명 넘는 노예 어부가 풀려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기사는 마기 메이슨, 로빈 맥도웰, 마사 멘도사, 에스더 투산 등 여기자 4명이 동영상 및 첨단 인터렉티브 기법을 동원해 만들었다. 멘도사는 2000년 한국의 노근리 학살 사건 보도로 한국인 최상훈 기자와 함께 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한 민완기자다.
속보 부문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버나디노 총격 사건을 보도한 일간 LA타임스가 선정됐다. 사진속보 부문은 유럽과 중동 지역 난민의 참상을 전한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통신이 공동 수상했다. NYT는 2001년 전쟁 이후 14년 만에 처참한 수준으로 전락한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인권에 대한 기사로 국제보도 부문도 수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경찰의 총기 사용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990건을 통계화한 기사로 국내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이 기사는 흑인 피살자가 백인보다 통계적으로 월등히 많다는 걸 증명해 흑인 인권운동의 동력을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 WP는 논픽션 부문에서도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다룬 ‘검은 깃발: IS의 부상(Black Flags: The Rise of ISIS)’이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탐사보도 부문에서는 일간지 탬파베이타임스와 새러소타헤럴드트리뷴이 뽑혔다. 이들은 플로리다 주정부의 지원을 받는 정신병원이 예산 삭감 때문에 위기에 처한 실태를 공동 보도했다. 지난해부터 잡지도 수상이 가능해지면서 격주에 1회꼴로 발행되는 시사지 ‘뉴요커’도 비평과 피처 보도 부문에서 명단에 올랐다.
퓰리처상은 언론계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언론인이자 정치인 조지프 퓰리처의 유언에 따라 매년 미국의 언론계와 출판, 드라마, 음악 등에 기여한 이를 뽑는다. 크게 저널리즘 14개 부문과 예술 7개 부문 등 21개 부문에서 시상한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새우 노예’ 해방시킨 펜의 힘… 퓰리처상 올해로 100회
입력 2016-04-20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