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사업가·체육인… 장애 이긴 사람들

입력 2016-04-19 20:26

지적장애 3급인 장성빈(전주예술고2)군은 아이돌 음악에 익숙한 또래들과 달리 전통음악인 ‘국악’에 푹 빠져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 권유로 판소리를 시작했는데, 3개월 만에 ‘흥보가’로 전국아마추어국악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스스로 명창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어요.”

어머니 배인년(54)씨는 “발달장애인 최초 명창을 꿈꾸는 아들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장군은 이후에도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가 상을 곧잘 받았다. 대화를 나눌 땐 발음이 정확하지 않지만 소리하고 노래 부를 때만큼은 가사 전달력이 뛰어나다. 장군은 “제일 좋아하는 ‘적벽가’를 완창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군은 재능을 나누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매년 2∼3차례 요양병원을 찾아 치매 어르신들에게 판소리와 민요를 들려주고 있다.

국내 유일 스포츠휠체어제조회사 ‘㈜휠라인’ 금동옥(44) 대표는 스물한 살 때 사고로 지체장애 1급을 받았다. 평생 장애인의 삶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홀어머니와 중학생 남동생을 돌봐야 하는 가장이었던 그에게 절망은 사치였다. 재기의 발판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그에겐 기술이 있었다.

“제가 휠체어를 타다 보니까 휠체어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선 커다란 병원용 휠체어만 제작이 가능했죠.”

몇 차례 실패 끝에 2009년 휠체어 제조공장을 설립, 맞춤제작이 필수인 ‘스포츠용 휠체어’로 승부수를 띄웠다. 노하우가 쌓이자 일반 ‘활동용 휠체어’로 영역을 넓혔다. 입소문이 나면서 중국까지 판로가 열려 연간 1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금 대표는 직원의 70%를 중증장애인으로 채용하고 있다.

뇌병변장애 2급인 윤정열(58)씨는 서울시뇌성마비복지관 축구단 코치로 활동 중이다. 그는 열 살이 되기 전까지 어머니 등에 업혀 등·하교를 할 정도로 장애가 심했다. 그를 세상에 나오게 한 건 ‘축구’였다. 덕분에 고등학교 과정까지 비장애 친구들과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윤씨는 19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에서 축구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메달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때 경험으로 이듬해 서울시뇌성마비복지관 축구단 전신인 뇌성마비장애인 축구부를 창단했다. 그라운드를 뛰던 선수에서 지도자로 포지션을 바꾼 뒤에도 ‘7인제 뇌성마비 축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계속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일 ‘36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를 훌륭하게 극복한 세 사람에게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여하고 각 1000만원의 격려금을 지급한다. 또 장애인공동생활가정 운영 등 권익 향상에 기여한 윤형영(57) 한국장애인선교단체총연합회 회장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하는 등 유공자 16명에게 포상한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