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전통 주법 ‘농현’ ‘시김새’ 세계서 하나 뿐인 소리 만들어내”

입력 2016-04-19 20:20
도널드 워맥(왼쪽), 토머스 오즈번(오른쪽) 하와이대 교수는 2008년 가야금 명인 이지영 서울대 교수(가운데)를 만난 이후 꾸준히 국악을 작곡해 왔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위촉을 받아 작곡한 신작을 선보이기 위해 내한한 두 교수가 18일 국립극장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윤성호 기자

서양 작곡가가 만든 국악관현악은 어떤 모습일까. 국립국악관현악단이 22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리는 관현악 시리즈 I ‘무위자연’에는 미국 작곡가 2명이 각각 만든 곡이 연주된다. 도널드 워맥의 ‘흩어진 리듬’과 토머스 오즈번의 ‘하루’다. 하와이대 작곡과 교수인 두 사람은 2008년 가야금 명인 이지영 서울대 교수의 하와이대 워크숍을 계기로 국악과 인연을 맺은 이후 여러 곡을 써왔다. 공연을 앞두고 내한한 두 작곡가와 이 교수를 18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이 교수는 “가야금 워크숍을 들었던 두 분이 몇 달 뒤 나를 위한 독주곡을 선물하겠다는 메일을 보내왔다”면서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깜짝 놀랐지만 워맥 선생님의 ‘줄타기’를 국내 연주회에 선보였더니 너무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금은 가야금 연주자들이 자주 연주하는 레퍼토리가 됐을 정도”라고 밝혔다.

두 사람은 아시아 문화권에 뿌리를 둔 인구가 많은 하와이에 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시아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특히 두 사람 모두 중국 및 일본 전통음악 연주자들과 협업을 해왔던 만큼 한국의 전통음악에도 자연스럽게 발을 들여놓게 됐다.

워맥 교수는 “한국의 전통악기가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악기와 외형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소리는 많이 다르다. 특히 한국 전통음악의 독특한 주법으로 음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농현’이나 ‘시김새’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소리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이어 “이 선생님과 만남을 계기로 한국의 뛰어난 국악 연주자 및 작곡가와 작업하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한국 전통악기를 연주하진 못하더라도 개념을 이해하면 작곡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고 밝혔다. 또 “이번에 이 선생님과 협연하는 ‘흩어진 리듬’은 ‘흩어진 곡조’를 의미하는 ‘산조’에서 가져온 것으로 가야금의 본질적인 매력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고 덧붙였다.

사실 국립국악관현악단을 비롯해 국악관현악단이라는 연주 시스템은 전통적인 국악에 서양식 오케스트라를 도입한 것이다. 서양 작곡가들이 국악을 작곡하는 것이 엄두를 못낼 정도는 아니어서 그동안 꾸준히 작품이 만들어졌다. 국내에서도 국악과 클래식의 협업이 흔해지면서 그 경계도 모호해지는 상황이다.

오즈번 교수는 “2012년 풀브라이트 재단의 지원을 받아 1년간 한국에서 국악을 연구하기도 했지만, 외국 작곡가의 입장에서 한국 악기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면서 “한국 악기의 음역, 기법, 기호 등 기본적인 요소들을 알아야만 악기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좋은 곡을 쓸 수 있는데, 한국에는 이 선생님의 책을 제외하고는 그런 자료를 거의 본 적이 없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 교수는 오랫동안 클래식과 국악 연주자들의 앙상블인 CMEK를 이끌어 오는 한편 가야금의 세계화를 위해 ‘연주가와 작곡가를 위한 현대가야금 기보법’을 내기도 했다. 10년에 걸친 준비 끝에 2011년 출판된 이 책은 가야금의 모든 연주 기법을 DVD와 함께 수록한 것은 물론 영어로도 표기해 외국 작곡가들도 쉽게 가야금이란 악기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가야금은 한국 악기 가운데 유일하게 외국에서도 통용되는 기보법을 가지게 됐다. 이 교수는 “국악의 세계화를 위해 해외에서도 한국 악기를 이해할 수 있는 기보법과 동영상 등 자료를 만드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22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무위자연’ 공연에서는 두 미국 작곡가 외에 국악관현악의 명작으로 꼽히는 김영동의 ‘단군신화’와 임준희의 ‘어부사시사’도 공연된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