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안철수, 게임 체인저가 돼라

입력 2016-04-19 18:45

의외의 선전을 했는데 재 뿌리는 것 같아 좀 그렇지만, 상황이 썩 좋지는 않다. 정치판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사방팔방에 적(敵)밖에 없다. 그가 당 출범 명분과 선거운동 핵심으로 내건 게 양당 기득권 타파다. 안락한 독과점 체제 속에서 권력과 자원을 독식하고 있었던 기득권 정치가 이익을 빼앗기거나 나눠 먹게 됐으니 심히 불편한 이들이 대다수다. 그런 세력과 지지층에 안철수는 뭘 해도 밉다. 아마 망가지기를 기다린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3당 체제는 오만한 여권 심판 등 여러 요인이 겹쳐서 만들어낸 결과지만, 요약하면 거대 기득권 양당 체제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다. 지역 패권, 정치 기득권, 정치인 기득권 몰락의 서곡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의당이 호남 편중이고, 그래서 ‘호남 자민련’ 수준으로 생존하다 없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그러나 수도권과 호남 외 지역에서의 정당 득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달라붙은 상황은 충청과 JP 중심으로만 맹목적으로 형성됐던 자민련과는 좀 다르다. 무엇보다 유권자를 졸로 보고 정치로 장난쳤던 낡은 보수·진보·영남·호남의 일부 기득권에 대한 민심의 대반격이 보태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총선은 임계점을 넘어선 양당의 수십년 독과점 기득권에 일격을 가한 것이다.

민심이 구도를 그렇게 만들어줬으니 ‘안철수 정치’는 국민에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안철수 정치의 내재적 입장에서 보면 그가 넘어서야 할 고비가 몇 개 있다. 우선 야권통합. 통합 주장은 야권 주류, 즉 친노를 중심으로 한 야권 기득권의 공세다. 통합은 도로 기득권 체제에 편입되는 것이다. 통합 논의에 한발 들여놓는 순간, ‘철수(撤收) 정치’는 재연된다. 3당 체제의 견제와 협치가 안정적으로 이뤄진 뒤, 대선 직전에 가서 하더라도 해야 한다. 지금은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게 안철수가 망하지 않는 길이다.

둘째, 대권욕이라는 공격이다. 여권과 야권 주류에서 줄기차게 제기할 것이다. 정치공학적 싸움이다. 안철수는 “대권 후보 여러 명이 경쟁하는 판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연 확장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호남 편중을 탈피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버거운 인물까지 영입하고, 합리적 보수를 적극 끌어들여야 한다. 한마디로 장(場)이 서야 뭐가 되더라도 된다.

셋째, 그가 가장 공격받을 지점은 ‘정체성이 뭐냐’이다. 정체성은 상대방을 적으로 낙인찍고 공격해댈 수 있는 아주 좋은 재료다. 내 줄에 서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한다. 친박과 친노의 거친 행태에서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내용 없이 추상적 언어만으로 공격해도 그만이다.

안철수가 이런 정치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이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되는 수밖엔 없다. 게임 체인저는 결과나 흐름을 확 바꿔놓는 인물이나 사건을 말한다. 야권통합, 대권욕, 정체성, 익숙한 정치공학적 용어들이다. 이런 표현으로 프레임을 설정하고, 편을 가르고, 공방을 펼쳐온 게 우리 정치다. 상대방이 찬성하면 우리 편은 무조건 반대해야 하는 게 기준이고 상식이었다.

미국 진보 진영의 정치전략 필독서였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이렇게 주장한다. “상대 프레임을 공격하지 말고 프레임을 재구성하라.” 게임 체인저는 기존 용어·방식을 무시해야 한다. 안철수는 아예 한국 정치 무대를 재설정하려는 담대함을 구현해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성공할 가능성도, 의미도 없다. 그저 ‘여도 틀렸고, 야도 틀렸다’는 꽃놀이패식 3당 전략으로는 어림도 없다. 안철수는 정치 언어와 방식을 확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돼야 성공할 수 있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