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어요. 가위로 바지를 잘라 보니 무릎에 구멍이 나 있었더군요.”
그는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 팀 닥터에게 물었다. “저 다시 축구할 수 있을까요?” 팀 닥터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부상은 심각했다. 오른쪽 무릎 뼈가 으스러졌다. 2010년 1월의 어느 날이었다.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하고 이적을 고민하던 심영성(29·강원 FC)은 팀의 배려로 동계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날 평소보다 더 많은 훈련을 했다. 집에 가서 쉬려는데 자꾸 약속이 잡혔다. 피곤한 몸으로 운전대를 잡았다가 깜박 졸았다. 그리고 사고가 났고, 그의 축구인생은 꼬여 버렸다.
심영성의 과거는 화려했다. 2004년 성남 일화(현 성남 FC)에 입단하며 K리그에 입성했다. 2006년 인도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에서 5골을 몰아쳐 득점왕에 올랐다. 2007 캐나다 U-20 월드컵 조별리그 브라질전(2대 3 패)에선 0-3으로 뒤져 있던 후반 38분 추격골을 터뜨리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그는 함께 대회에 출전했던 기성용(27·스완지시티), 이청용(28·크리스털 팰리스), 박주호(29·도르트문트) 등과 함께 한국 축구를 이끌 유망주로 꼽혔다.
그러나 불의의 교통사고가 앞길을 캄캄하게 막아섰다. 한 없이 높고 두꺼운 콘크리트처럼 말이다. 2011년 6월 가까스로 복귀했으나 8경기 출장에 그쳤다. 공격 포인트는 1개도 없었다. 2012 시즌 초반 그는 김상호 전 강원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임대에 응했다. 그해 7월 강원 사령탑에 오른 김학범 감독과 재회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몸이 올라와야 써 먹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좀처럼 출장 기회를 못 잡던 심영성은 강원이 강등권 탈출을 위해 안간힘을 쓰던 11월 마침내 연속 선발 기회를 잡았다. 11월 5경기에 나선 그는 강원의 클래식 잔류에 큰 힘을 보탰다.
무릎 부상으로 공익근무요원이 된 심영성은 포천시민축구단에서 활약하며 축구와 인연을 이어갔다. 오후 6시에 일과를 끝낸 뒤 공을 찼다. 지난해 1월 제주로 복귀했지만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다.
“지난 시즌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습니다.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죠. 최윤겸 감독님이 강원에서 뛸 생각이 없느냐고 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그때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심영성은 이번 시즌 강원에서 그야말로 펄펄 날고 있다. 5경기에서 4골을 넣어 챌린지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난 9일 충주전에서 시즌 첫 골을 넣은 데 이어 13일 안산전과 16일 고양전에서도 골 맛을 봤다. 특히 고양전에서 프로 데뷔 이후 첫 멀티골을 넣었다.
심영성에게 이번 시즌 골을 잘 넣는 비결이 뭐냐고 물어 봤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우리 복덩이 덕분입니다.” 복덩이가 누구냐고 다시 물었다. “우리 둘째 딸입니다. 지난 1월 1일에 태어났어요. 이 애를 얻은 뒤로 좋은 일만 생겼습니다. 그러니 복덩이죠.”
심영성은 2013년 10월 19일 결혼한 아내 정소미씨와의 사이에 두 딸 지유(3)와 소유(1)를 두고 있다. 그는 가족 생각만 하면 힘이 난다고 했다. “누구보다 아내에게 고맙죠. 제가 풀이 죽어 있을 때마다 ‘당신을 믿는다’며 힘을 줘요. 올해 골을 많이 넣으니 ‘이제 시작인데 너무 흥분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올해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아서 그런지 원하는 대로 볼이 쌩쌩 날아가더라고요. 하하하….”
심영성은 이번 시즌 구체적인 개인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고 했다. “공격포인트를 몇 개 올리겠다고 정해 놓은 건 없어요. 목표가 있다면 다치지 않고 꾸준히 출장하는 것입니다. 올해 30경기 이상 출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심영성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선수가 됐을 텐데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내 말을 바꿨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죠. 이렇게 다시 공을 찰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해요.”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프로축구] 2007년 U-20 월드컵 대표 심영성… 올 시즌 K리그 강원FC서 펄펄
입력 2016-04-20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