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미국에서 ‘다함께 예배드리기(Worship together) 운동’이 전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젠 손버그 박사라는 사람을 통해서입니다. 그녀에겐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들 로버트가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갈 때마다 아들은 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인 중 어느 누구도 로버트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로버트가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당연하다는 듯, 아니 교회 나오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교인들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손버그 박사는 장애인을 예배자로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다함께 예배드리기 운동을 전개하게 됐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베드로와 요한은 늘 하던 대로 기도하기 위해 성전을 향했습니다. 성전 미문에는 40년간 그 자리에서 구걸하던 지체장애인이 있었습니다. 성전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장애인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장애인 역시 기도하러 올라가는 사람에게 구하는 것은 몇 푼의 돈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발걸음이 장애인 앞에서 멈춘 것입니다. 주머니에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자신들에게 치유하는 은사를 발견했거나 누군가를 치유했던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요한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고 명령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과연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까요.
첫째, 그 장애인은 예배자로서 살게 됐습니다. 그의 다리에 힘이 붙는 순간 제일 먼저 한 일은 “뛰어 서서 걸으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었습니다. 40년간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장애인에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러 가는 자들조차 이 장애인을 구걸하는 존재로만 간주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예배자의 삶을 살게 됐습니다.
둘째, 그 장애인은 증인이 되어 베드로와 요한을 변호했습니다. 장애인이 변화되는 순간,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 충만한 설교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에게 행한 선한 일 때문에 감옥에 수감됐습니다. 그러나 치유 받은 장애인이 증인으로 변호에 나서면서(행 4:14) 베드로와 요한은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셋째, 장애인 치유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됐습니다. 치유 사건은 개인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령은 장애인이 치유 받는 순간 5000명 넘는 증인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장애인의 치유 사건이 성령의 사역임을 증언했습니다. 이로 인해 초대교회의 부흥이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를 돌아봅니다. 우리는 예배자로서 장애인을 인정합니까. 예배당에 장애인이 스스로 들어올 수 있도록 준비돼 있습니까.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교회가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입니다. 아직도 예배자의 열망을 가진 장애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장애인과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로 변화됨으로써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는 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
이계윤 목사 (지체장애인선교연합회장)
◇약력=△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 졸업 △장애인복지선교협의회 회장 역임 △'장애인신학'(한국장로교출판사) 집필 △현 동빙고교회(김수훈 목사) 협동목사
[오늘의 설교] 장애인을 통한 성령의 역사
입력 2016-04-19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