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도넛 가게로 들어가다… ‘변신’ 거듭

입력 2016-04-20 04:03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몰에서 현금을 찾으려는 우리은행 고객들은 현금카드를 들고 도넛 가게로 가야 한다. 우리은행은 이르면 다음달 롯데월드몰에 있는 도넛 가게인 ‘크리스피크림’ 매장에 소규모 은행 점포를 열 계획이다. 10여평밖에 안 되지만, 쇼핑몰에 찾아오는 다양한 고객들과 접점을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은행 점포를 빌려주는 게 아니라 우리은행이 크리스피크림 매장의 일부 공간을 빌려 쓰는 형태의 복합 점포다.

은행 점포들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큰 간판을 붙이고 넓은 영업점 안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줘야 한다는 개념을 버렸다. 도넛 매장처럼 다른 업종과 결합한 미니 점포를 열거나, 특정 지역에 한정된 장소를 벗어나 권역별 지점끼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혁신점포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이른바 ‘허브 앤 스포크’(Hub&Spoke·자전거 바퀴처럼 허브 센터와 위성 영업점으로 영업망을 개편) 전략이다.

저성장·저금리로 수익성이 떨어지고 온라인 거래 비중은 높아진 데 따른 위기감이 은행 지점을 바꾸고 있다. 전체 지점과 현금인출기 숫자는 줄이면서 기동력을 넓혀 새로운 고객을 찾아가는 공격적인 영업으로 효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지난달 말 우리은행은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지점에 커피숍 ‘폴바셋’ 매장을 결합한 ‘카페 인 브랜치’를 선보였다. 은행 지점에 카페를 들여온 사례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19일 “지점을 줄인 공간을 단순히 처분하는 게 수동적인 대응이라면 (유통 매장과의) 전략적 제휴는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기 위한 능동적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은행들이 새로운 영업망 구축에 공을 들이는 것은 기존 방식의 점포는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터넷·모바일뱅킹을 활용한 금융거래가 늘면서 점포 유지에 필요한 비용이 상대적으로 부담스러워졌다. 국내 은행 점포는 2013년 말 7599개에서 지난해 말 7278개로 감소했다. 기존 상권에 자리 잡았던 은행 지점들이 상권 변화로 경쟁력을 잃는 경우도 많다.

부동산 임대 수익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국토교통부와 업무협약을 맺고 유휴점포를 부동산투자회사(리츠)에 매각한 후 리츠가 이를 주거용 오피스텔로 재건축하는 뉴스테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은행법 시행령을 개정, 은행들이 지점의 면적을 줄여 다양한 형태의 미니지점을 도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또 아예 지점을 없앤 곳은 증개축과 임대로 부동산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은행이 소유한 건물이라도 전체 면적의 10% 이상을 지점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비업무용으로 분류해 임대를 금지하고 있다. 또 지점을 없앤 건물은 1년 이내에 매각해야 하고 그 기간 동안 임대를 금지했다. 앞으로는 건물 내에서 은행 지점 규모는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고, 나머지 공간은 임대할 수 있도록 바뀐다. 또 지점을 아예 없애거나 담보물로 취득한 부동산은 처분 기한을 3년까지로 연장하고, 그 기간에는 임대도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정희수 개인금융팀장은 “은행들이 점포 변화의 트렌드는 따라가고 있지만 다른 지점과 성과보상체계(KPI)의 형평성 문제가 남아 있고, 혁신점포 수도 많지 않아 소비자들이 느낄 만한 실질적 변화는 아직 부족하다”며 “은행들도 점포 공간을 줄이고 카페 등을 결합한 형태의 점포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상진 김지방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