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유력 대선 후보가 성폭행 후 피살된 외국인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막말’을 해 파장이 일고 있다. 3주 앞으로 다가온 대선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필리핀 유력 대선 후보이자 남부 다바오 시장인 로드리고 두테르테(71·사진)는 최근 유세에서 1989년 다바오에서 발생한 교도소 폭동 사건을 언급했다. 연설하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은 유튜브에 공개됐다. 그는 당시 수감자들에게 집단으로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호주 출신 여성 선교사를 언급한 뒤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고, 나는 시장이 먼저 (성폭행 현장에)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면서 지지자들과 함께 폭소를 터뜨렸다. 두테르테는 당시에도 다바오 시장이었다.
두테르테의 ‘막말’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교황이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도 대중 연설에서 “개XX, 집에 가버려”라고 막말을 내뱉었다. 교황 방문으로 교통체증이 유발된다는 이유였다. 또 과거 여성편력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등 각종 막말과 기행으로 ‘필리핀의 트럼프’(미국 공화당 대선주자)로 불린다.
그런데도 두테르테는 필리핀에서 당선이 유력한 대선 주자다. 비결은 엄격한 사법 시스템을 통한 ‘범죄와의 전쟁’을 주요 공약으로 내건 것. 섬이 많고 무허가 총기가 널리 보급된 필리핀은 제대로 된 공권력에 대한 갈망이 높다. 그의 선거 전략은 이런 여론을 파고들었다. 두테르테는 “범죄자 10만명을 처형한 뒤 마닐라만에 던져 물고기가 살찌게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렴해 보이는 이미지도 지지세를 넓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번 필리핀 대선에는 두테르테를 비롯해 여성 상원의원 그레이스 포(47), 제조마르 비나이(73) 현 부통령, 마누엘 로하스(58) 전 내무장관이 오차범위 안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지난 12일 리서치업체 펄스아시아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두테르테는 30%의 지지를 얻어 2위인 포 상원의원을 5% 포인트 차이로 앞서며 선두로 치고 나갔다.
때문에 다음 달 9일 치러지는 선거에서 그의 막말이 어떤 식으로 반영될지 주목된다. 영상이 공개되자 다른 후보들은 일제히 비난성명을 발표했다. 에르미니오 콜로마 대통령궁 대변인은 “여성에 대한 존중이 완전히 결여됐음을 보여준다”며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비나이 부통령도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완전히 미친 사람으로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두테르테는 “피해자를 비하하거나 우스갯거리로 삼을 의도는 없었다”면서도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제를 채택한 필리핀에서는 대통령이 6년의 임기 동안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대신 헌법으로 연임을 제한했다. 베니그노 아키노(56) 대통령이 선거에 나올 수 없는 이유다. 선거는 다음 달 9일 하루에만 치러지며 부통령 선거도 같은 날 치른다. 대통령과 부통령이 ‘러닝메이트’로 함께 출마하는 미국과는 달리 필리핀에서는 각각의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부통령 후보 가운데서는 필리핀을 1965∼1986년 통치한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들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58) 상원의원이 마르코스 정권 축출 30년 만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 유력 후보로 언급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필리핀의 트럼프, 성폭행 피살 여성에 막말·폭소
입력 2016-04-19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