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나 써볼라고 한글을 배웠는디, 인생을 돌아봉께 금세 시가 돼 있드랑께.”
70대 중반까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산간 오지마을 할머니 9명이 한글을 깨친 지 불과 4년 만에 124편에 걸쳐 써놓은 시를 모아 시집을 발간했다.
이들 할머니는 며느리로서 살아온 ‘시집살이’와 뒤늦게 한글을 배우고 시작한 ‘詩집살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아 ‘시집살이 詩집살이’(사진)라는 제목으로 지난 15일 시집을 냈다.
이 시집에는 어르신 세대들이 공감하는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의 가족사랑 이야기와 역경을 견뎠던 순간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구수한 사투리로 담겨 있다.
18일 오전 11시 전남 곡성군 입면 서봉마을에 위치한 ‘길 작은 도서관’에 9명의 할머니 가운데 3명이 회의 탁자에 앉아 시 한 편씩을 A4용지에 써내려갔다. 나머지 할머니들은 몸이 아파 병원에 가거나 오전 농사일이 아직 끝나지 않아 오후쯤에나 이곳에 나온다고 했다.
“부자로 사는 해술이네에 남편이 일 갔다/배가 고파 죽겄는디 밥 한술 안준다/가반을 한 그릇씩 주면 그걸로 새끼들하고 먹고 산디/밥 한술 안준다/남편아 그 집엔 일가지 마소.”
김막동(82) 할머니가 이번 출간 시집에 써 놓은 시 가운데 하나인 ‘가난1’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김 할머니는 “남의 농사일 해주고 받는 품삯 말고 가반(加飯)을 따로 준디, 그걸 안 주더랑께. 그래서 (애들이랑)굶었제”라면서 “시 씀시롱 옛날 생각 하다봉께 10년 전 세상 떠난 영감(남편)이 소싯적 나한테 준 맴(사랑)이 많이 생각나드랑께”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점순(78) 할머니는 “처음 한글 배우기가 너무 어려웠는디, 관장님이 기언시(기어이) 맴을 돌레나서 한글도 배우고 요로콤(이렇게) 시집까지 안 내부렀다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들 할머니가 시집을 내게 된 데에는 작은도서관장인 김선자(46)씨가 있었다. 2004년 입면 제1교회 목사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 이곳에 둥지를 튼 김씨는 2009년부터 한글을 모르는 9명의 할머니들을 모아 예배당에서 한글 강의를 시작했다. 2011년 동네 마을의 빈 가옥 한 채를 자신 돈으로 매입한 뒤 40㎡ 남짓의 작은 방 3칸을 개조해 ‘길 작은 도서관’으로 탄생시켰다.
김씨는 2012년 4월 이들 할머니를 모시고 시문학 강의를 처음 시작했다. 이어 할머니들에게 이면지와 달력 뒷장에 수업 후 시 한 편씩 쓰는 연습을 시켰다. 그렇게 4년 뒤 잘된 작품들이 모여 ‘시집살이 詩집살이’의 시집이 만들어진 것이다.
김씨는 “‘길 작은 도서관’은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방과후 갈 곳 없는 아이들의 공동 사랑방”이라며 “도서관 운영에 부족한 점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곡성군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곡성=글·사진 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
“한글 배우고 인생을 돌아봉께 詩가 됐어”
입력 2016-04-18 1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