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맛’이라는 말이 있다. 10대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50대는 ‘백 번 말해도 못 알아듣는’ 표현이다. 꽤 오래된 인터넷 조어인데 처음 들어본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병맛이라니…. 이 이상한 말의 정체는 대체 뭘까.
10∼20대에게 병맛은 문화의 일부다. 10대의 말을 흔히 쓰는 50대가 늘었다지만 병맛을 제대로 아는 기성세대를 찾기란 힘들 것이다. 병맛 문화를 만들어내는 이들 중에 30∼40대도 상당수 포진해 있다는 게 묘한 대목이다.
병맛을 딱 떨어지게 설명할 수는 없다. 보통 ‘맥락 없고 형편없고 어이없다’ 정도로 풀어쓴다.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1960∼80년대 대중문화의 홍수를 경험한 이들에게 ‘요즘의 B급 문화’라고 하면 약간 넘겨짚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론 부족하다. 역시 병맛은 겪어봐야 안다.
다양한 병맛의 세계를 맛보기에 딱 좋은 매체가 있다. 웹툰이다. 병맛이란 말이 처음 태동할 무렵부터 이 문화코드는 웹툰과 함께했다. 하지만 한두 번 보는 걸로는 알기 힘들다. ‘어느 대목에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는 당혹스러움’만 경험할 수 있다. 왠지 묘하게 끌리는 한 작품을 계속 보다보면 낚시꾼이 손맛 알 듯, 병맛의 맛도 알게 된다.
◇예측불허 코믹부터 19금까지=‘스퍼맨’ ‘첩보의 별’ ‘가담항설’ ‘2016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최근 몇 달 네이버 웹툰 인기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작품들이다. 여기에는 ‘병맛’이라는 교집합이 있다.
‘스퍼맨’은 하일권 작가의 신작이다. 연재한 지 두 달도 안 돼 가장 핫한 웹툰이 됐다. 하일권은 ‘삼봉이발소’ ‘두근두근두근거려’ ‘안나라수나마라’ 등 정극 위주의 만화를 그려온 인기 작가다. 2011년 ‘목욕의 신’으로 이 세계에 발을 들였던 그는 ‘스퍼맨’으로 물오른 병맛을 보여주고 있다.
‘스퍼맨’은 주인공을 비롯해 극중 캐릭터의 노출 정도 때문에 ‘19세 이상 관람가’로 지정됐다. 그렇다고 에로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야하거나 질척거리는 장면보다 ‘병맛스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더 많다. 일부 독자들 사이에서 ‘수위가 약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병맛 웹툰의 고전 ‘꽃가족’의 이상신, 국중록 작가는 신작 ‘첩보의 별’을 내놓았다. 독자와의 독특한 소통부터 병맛스럽다. 주인공의 위기타개책을 독자에게 ‘댓글로 알려달라’고 한다. 작가들이 고른 독자 댓글의 콘티에 따라 의외의 방식으로 만화가 전개된다. ‘꽃가족’은 MBC 에브리원 ‘툰드라쇼’에서 김원준, 정시아 등이 출연하는 드라마로 방송 중이다.
옴니버스 ‘2016 학교다녀오겠습니다’에는 컷부, 랑또, 황준호, 혜니 등 인기 작가들이 참여했다. 작가의 성향과 상관없이 병맛 코드로 일관한 단편 모음이다. ‘가담항설’은 ‘SM플레이어’라는 희대의 병맛 만화로 인기 작가가 된 랑또의 신작이다. 정극에 가까운데 독자들은 언제라도 병맛 코드가 튀어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웹툰의 고전은 병맛과 함께=‘마음의 소리’(조석) ‘이말년 씨리즈’(이말년) ‘패션왕’(기안84) ‘정열맨’(귀귀)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컷부) 등은 병맛 웹툰계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10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고, 오랜 연재로 20∼30대 독자층도 상당히 두텁다.
2006년 9월부터 연재한 ‘마음의 소리’는 지난 18일 1034회까지 나왔다. 코믹 웹툰으로 시작해 강도 높고 다양한 병맛 코드를 선보이며 최고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다. 조석은 손에 꼽히는 고수익 웹툰 작가로 거론된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패션왕’은 기상천외한 패션과 독특한 포즈로 인기를 끌었다. 방송에서도 곧잘 패러디 되곤 했다. 똥, 방귀처럼 유치한 소재로 화끈한 병맛을 선보였던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는 2014년 미국에서 열린 ‘인디 코믹 리딩’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에도 출연했던 이말년 작가, ‘정열맨’ ‘낚시왕’ 등을 그린 귀귀 작가는 ‘안 예쁜 그림’ ‘못 그린 것 같은 작화’로 병맛 코드를 극대화한다. 이말년은 “병맛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려하면 더욱 재미없어진다”고 했다. 설명하기도 힘들고 설명해야 소용 없는 ‘병맛’, 자꾸 보다보면 뭔지 알게 된다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아삭아삭! 스낵컬처] 50대는 백 번 말해도 못 알아듣는다는 ‘병맛’ 보실래요?
입력 2016-04-19 17:50